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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Nov 21. 2018

신과 함께

  내가 혼자 교회를 가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교회는 금단의 구역 같은 곳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교회는 가면 큰 일이 나는 곳인 것처럼 가르쳤다. 언젠가 우연히 교회에서 빵 따위를 받아 왔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장발장이 된 기분을 느꼈다. 그 후 스무 살 무렵인가 도무지 어찌할 바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종교라도 새로 가지면 괜찮을까 싶어서 교회를 가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생각 뿐이었다. 작년 아빠와 단 둘이 부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 아빠는 사실 젊은 시절 외로웠을 때 본인도 잠깐 교회를 가본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일요일 오전의 스터디 모임이 하필 늘 함께 가던 교회 주변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내가 혼자 교회를 가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점심까지 먹고 나니 애매한 오후 3시였고, 예배까지는 1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역시, 포기하고 몸도 안 좋은데 집에 얼른 가서 쉴까 하다가 오늘이 아니면 더 이상 이곳은 오지 않을 것 같아, 교회 1층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책을 읽었다. 나와 다를 바 없지만, 나와 어딘지 달라 보이는 사람들. 거리에서 만났다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사람들일텐데, 어쩐지 이 공간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외국인들이 가득한 거리에 나만 혼자서 동양인인 채,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 같은 느낌.


  본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어서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함께 여러 번 오면서 이 환경에 꽤 적응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모두가 노래를 부르는 이 시간 만은 쉬이 익숙해지지가 않았었다. 다시 한 번 돌아갈까 생각하며, 가장 빨리 나갈 수 있는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노래가 끝난 후, 여러가지 행사에 대한 설명이 진행됐다. 20~30분 정도가 지나서야 목사님이 예배를 시작했다. 주제는 회복이었다.


  회복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상처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최근에 무엇에 상처 입었나, 나는 지금 회복되고 있는 중인가. 중간에 목사님의 소개팅 에피소드는 매우 재밌었지만, 그 외의 내용에는 어쩐지 잘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아무도 없는 옆자리가 계속 신경 쓰였다. 그 와중에 예배를 드리는 중간에 심하게 어깨를 떨고 눈물을 흘리던 언젠가의 너가 생각났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공감해줄 수 없는 너의 세계 중의 하나였다.


  너는 너의 세계에 함께 머물러 주기만을 바랐지만 나는 늘 심술궂게 그 요청을 피하고는 했었다. 반은 심술이었고 반은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핑계였다. 한 번, 두 번은 괜찮지만 매 번은 어렵지 않을까. 언젠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바에야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들. 나도 한국이 싫었지만 한국을 떠나서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나는 온전히 공감해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직장도, 직업도 바꾸다가 마침내 한국을 떠나기로 했을 때 너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나는 온전히 이해해줄 수가 없었다.


  내가 혼자 교회를 가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문득, 아니 종종 너가 혼자 이 곳에 왔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한국을 떠났었는지 알고 싶었다. 이유는 들었지만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 하루가 조금 더 납득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너의 신에게 우리 모두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드리고 싶었다.


  장난 삼아 짖궂게 누가 더 중요하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너는 당연히 언제나 신이 1순위라고 이야기했다. 그 때는 장난이면서도 어쩐지 서운한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너의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먼 타국에서 혼자 지내더라도 어느 상황이라도 의지하고 돌봐 줄 존재가 있으니까. 대륙은 바다로 분단되어 있어도, 하늘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으니까 어디서든 너가 의지할 수 있고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지켜줄 테니까. 가끔은 그런 존재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너가 참 부러웠다.


  어느새 목사님이 하시는 말은 잘 들리지 않고, 혼자 생각에 빠져 있던 중 목사님의 말씀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기도를 드리고 다시 사람들이 일어서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함께 일어서기에는 내가 너무 불온한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서둘러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교회를 완전히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마음 속으로 두 번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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