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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Nov 11. 2018

누군가의 비자발적 퇴사 이야기

  한달 전 늦은 저녁, 여느 때처럼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들어 회사에서 더 힘들어졌다는 이야기였다. 함께 일하던 동료 한 분이 얼마 전 퇴사를 했는데, 덕분에 두 배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퇴사한 그 분은 일을 못해서 사람들이 싫어 했었다고 한다. 매 번 업무를 할 때마다 너무 실수와 잘못이 일어났는데 변명만 했다고 했다. 이렇게도 가르쳐 보고, 저렇게도 타일러 보기도 했는데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게다가 사람들과도 관계가 좋지 않고, 눈치마저 없어서 사람들이 싫어 했다고 한다. 그렇게 주변에서 타이르고 했었는데 그냥 적당히만 할 수 있어도 됐을텐데, 너무 아쉬웠다고 엄마는 말했다.


  조직에 늘 그런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한 사람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라고 생각하면 그 퇴사는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조직에서 그 사람이 성과를 낼 수도 행복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빨리 판단을 내려주고 다른 길을 찾아가게 해주는 것이 조직으로나 개인으로나 더 합리적이고 행복한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좌뇌로는 꽤 합당한 근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일했던 HR팀에서는 퇴사의 종류를 크게 자발적 퇴사와 비자발적 퇴사로 나누었다. 자발적 퇴사는 학업, 이직, 여행 등의 이유로 근로자의 의지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를 말했다. 반대로 비자발적 퇴사는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은 의지가 있어도, 회사의 의지로 인해 근로자가 계속 회사를 다닐 수가 없는 경우를 말했다. 성희롱, 횡령 등의 사건으로 비자발적 퇴사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저성과로 인한 퇴사가 많았다.


  저성과자, 회사에서 성과를 못 내는 사람. 쉽게 이야기해서 회사에서 일을 못한다고 여겨지는 사람. 보통, 팀에서 상대적으로 일을 못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걸 HR팀도 알게 되는 수준에서는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저 사람이 저성과자가 맞는지, 저성과자로 불리던 대상자를 만나고 대상자의 리더를 만나고, 대상자의 동료를 만나는 경우들이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과정도,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내는 과정도 늘 고통스러웠다. 모두 각자의 입장과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 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팀에서 내팽겨진채, 팀에서 버리는 업무들을 맡으며 4년 간 일한 사람이 있었다. 4년 간 제대로 일하고 성장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팀장은 회사에서 따로 교육까지 보내주고 멘토까지 붙여주면서 열심히 가르쳐줬지만 도저히 따라오지를 못해서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늘 각자의 사정과 상황이 있었다. 나는 주로 의견을 덧붙이는 정도였지만, 한해 한해 연차가 더 쌓일 수록 나는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누군가의 삶을 선택짓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늘 그 순간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들이 두려웠다.


   이주 전 늦은 오후, 예정에 없이 HR실장님께 메시지가 왔다. 스타벅스 기프티콘과 함께 였다. 다소 늦게 혼자서 점심을 먹고 있다가 내가 생각나서 보낸 것이라고 했다. 퇴사하고 6개월 만에 하는 연락이었다. 선물함을 열어보니 "지금 근사한가요?"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근사한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답장을 보내드렸다. 열심히 안 살아서 거기 간 게 아니니, 근사해 져야 한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그리고 감동, 그런 거 너무 사랑하지 말라고.


  나는 실장님을 싫어 했었다. 내가 퇴사한 이유 중에는 아무리 열심히 잘해도 결국 실장님의 삶을 살게 될 것 같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조직과 개인을 저울질 하면서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가에 대한 분노와 미움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싫어했던 이유는 HR실장으로서의 그 판단과 모습들이 이해가 가는 순간들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인간적으로는 좋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지금 실장님을 생각하는 것처럼의 모습이 되어버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위치까지 가는 것이 내가 이 조직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성공한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오래 전부터 근사하거나 존경받을 필요는 없지만 존중받는 인간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HR을 하면서도 존중받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는 어느 덧 나의 가장 이상적인 목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1,000명 정도 되는 회사의 HR 담당자에서 8명이 전부인 스타트업의 조직문화 팀장이 되었다.


  엄마와 그 통화를 마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좌뇌로는 명쾌했던 일들이었는데, 우뇌에 아직도 잔상이 남은 것은 아마 이 이야기를 들은 까닭일 것이다. 


  "그 아줌마가 오십 대가 넘어서도 혼자서 살고 있었는데 회사에 입사했을 때 엄청 좋아했거든. 그 전에는 보험같은 그런 일을 계속 했는데, 여기는 월급도 안정적으로 따박따박 나오고 하니까 그런 게 너무 좋았나보더라. 다른 것보다 그런 일 할 때는 맨날 끼니도 놓치고 밥도 혼자 먹고 그럴 때가 많았는지, 사람들이랑 그냥 모여서 점심 먹을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점심 시간만 되면 체구도 작은데 밥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집에 가면 또 혼자 밥 먹어야 되고 하니까 그랬겠지. 아무튼 그래서 그렇게 잘 이야기하고, 타이르고 했는데, 그랬는데도..."


  근사한 사람이 그 회사의 대표이거나 HR담당자였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근사하게 산다는 건 도대체 어떤 것일까. 다 떠나서 HR을 하면서도 나는 구성원들로부터 존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매주 그런 생각들이 일요일 밤을 채우고, 어김없이 월요일에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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