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침묵

왜 신은 침묵하는가

by Peeping

올해 들어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책꽂이에 점점 쌓이는 책들을 조금씩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책을 읽지는 않지만 모으는 기간이 꽤 길었다. 거의 3년의 기간이었다.


문득 든 호기심에 책을 세어보니 250권이 조금 넘었다.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점점 쌓인 책에 시선이 갔다.

조금씩 습관처럼 읽어가다 보니 올해만 해도 20권가량의 책을 읽었다.

한 달에 3권 정도씩 보았다.


그리 어려운 책을 보진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독서노트도 작성하고 있지만 그로써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다.

입력(INPUT)과 동시에 출력(OUTPUT)이 병행되어야 기억에도 남지 않을까.


목차는 올해 읽었던 책들 중 재미있었던 책들로 구성했다.

그중 첫 번째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다.


참, 시작하기 전에 이 리뷰는 아주 주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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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교다.

글을 쓰기 전에 밝히자면 나는 무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불교에 조금 가까운 무교이다.

그런 내가 이러한 기독교 서적을 읽은 이유는 단순하다.

올해 5월, 알라딘 서점을 둘러보다 믿음의 글이라는 카테고리가 눈에 띄었다.

마침 성경에 대한 호기심도 일던 시기였다.


첫 장을 펼치니 엔도 슈사쿠의 얼굴 아래 다음의 글이 있었다.

"하나님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

종교로 인해서 특정인이 박해당할 때 하나님은 대체 무얼 하고 계신 걸까,

왜 하나님은 그 고문하는 이와 고문받는 이를 바라만 보고 있는가,

결국 하나님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이 나를 책 속으로 끌어당겼다.



줄거리 요약


이 책은 1960년에 발간되었으며 기독교 박해가 심했던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포르투갈의 예수회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페레이라 신부가 일본 나가사키에서 고문을 받고 배교를 맹세했다. 그가 일본에 체류한 지 33년이 되던 해였다. 그는 뛰어난 신학적 재능을 가졌으며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선교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어떠한 사정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배교했다. 이에 의문을 가진 페레이라의 제자 3명(페드리고, 가르페, 마르타)이 이를 확인하고자 일본으로 향한다. 기나긴 여정 도중 말라리아에 걸린 마르타는 최종 경유지인 마카오에 남게 되고 페드리고와 가르페 둘만이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여기서 마카오에서 만난 일본인 안내자 기치지로가 함께 일본으로 향한다.


여기서 기치지로라는 사람에 대해서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그는 그리스도교 신도이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면 바로 배교를 하는 인물이다. 나약하고 교활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페드리고는 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태도는 그리스도교적인 인내의 덕과는 거리가 먼, 바로 겁쟁이의 나약함과 비겁함 그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일본에 입항한 시점은 이미 기독교 박해가 극심했던 시기였다. 기치지로의 도움으로 도착한 첫 번째 장소는 도모기 마을이며, 그곳에서 몰래 신자들과 교류하며 낡은 움막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고발(그리스도교를 고발한 자는 은 30냥을 받았다.)로 관리들에게 신자들의 존재가 알려지고, 결국 도모기 마을의 신자들은 체포당하고 고문당한다.


관리들은 그들이 신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후미에(그리스도의 얼굴이 새겨진 널빤지)를 밟게 하였다. 이에 기치지로가 먼저 후미에를 밟고 나머지 두 명의 신도가 그것을 밟았다. 하지만 그 주저함을 알아차린 관리는 후미에에 침을 뱉도록 시켰다. 그리고 성모에 대해 매음녀라고 말하도록 시켰다. 기치지로는 성모를 모욕하는 말을 내뱉고 침을 뱉었지만 나머지 둘은 그러지 못하였고 결국 모진 고문을 당한다. 그 고문은 바닷가에서 조수 차를 이용해서 서서히 죽음을 맞게 하는 벌이다. 이 잔혹한 장면을 멀리서 지켜본 페드리고는 깊은 충격에 빠지며, 하나님은 왜 인간들의 소리에 아무런 응답도 없이 다만 말없이 침묵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왜 신은 침묵하는가

위에 설명한 줄거리는 전체의 1/3에 해당한다.

결국 페드리고와 가르페는 도모기 마을을 떠나서 갈라지게 된다.

그런 와중 기치지로의 배신으로 페드리고 신부는 관리들에게 붙잡히게 되고,

이후에는 배교한 페레이라 신부와 재회하게 된다.

그는 페드리고에게 배교를 종용하게 되고, 조금 다른 이유로

페드리고도 배교를 선택하게 됩니다.


여기서 페드리고가 배교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가 정말 잔인했다.

일본 관리들은 신부를 고문하는 대신 신자들을 고문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즉, 신부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면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으며 죽어가게 만들었다. 여기서 페드리고는 후미에를 밟게 되는데, 이는 신앙을 포기하는 선택이기보다는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임을 나타낸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신은 왜 침묵하는가?"

사실 엔도 슈사쿠가 생각하는 답은 책의 첫 장에 나온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결국 이 소설에서 왜 신이 침묵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나오지 않지만 페드리고가 느낀 신의 침묵은 그의 부재가 아닌 '함께함'을 의미한다. 즉 신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함께 고통받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의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하는 사랑을 의미한다.


기치지로와 유다

마지막으로 기치지로에 대해서 조금 더 적어본다.


기치지로는 말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요?

신부님, 저희들은 나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기치지로는 겁 많고 나약하며, 반복적으로 배교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페드리고를 따라다니며 참회한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요청하고, 또다시 죄를 짓는다. 이 인물은 성경 속 유다와 겹쳐진다.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를 배신하였고 기치지로는 은 300냥에 페드리고를 배신한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유다는 이후 죄책감에 자살하지만, 기치지로는 계속해서 살아남아 끊임없이 용서를 구한다. 그렇다면 기치지로는 배교와 배신을 반복했음에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나는 종교에 무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 그는 구원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마무리하며

내가 읽은 감상으로 침묵은 단순한 종교소설이 아니다. 신이란 존재에 대한 의심과 고뇌, 신앙을 지킨다는 것의 윤리와 책임,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되묻게 하는 작품이다.


나는 무교지만, 이 책을 통해 종교를 믿지 않아도 신의 자리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아마 가장 고통스러운 곳, 가장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함께 울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 해본다.




제목 : 침묵

작가 : 엔도 슈사쿠

출판사 : 홍성사

페이지 : 308p

구매처 : 알라딘 대구 동성로점

읽은 시기 : 2025년 7월7일-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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