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주변인들의 추천을 받아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지독한 병렬 독서인인 내가 겨우 3번에 나누어 모두 읽은 책이니
그 가독성과 몰입감만큼은 보증할 수 있을 것이다.
TMI로 현재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강의>, <여자에 관하여>, <철도원 삼대>, <초역 명상록>을
함께 읽고 있다. 그중에서도 <철도원 삼대>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이 책에 대한 찬사를 좀 더 보태자면
우선 문장력이 너무나 뛰어나다. 어려운 묘사가 없고 쉽게 읽히면서
문장들은 하나 같이 주옥같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많은 문장을 필사한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모순>의 스토리와 그에 담긴 교훈보다 더 좋았던 부분이 이 책이 가지는 세련된 문장력이다. 더불어 그 문장력에서 나오는 반의어들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책의 이름이 <모순>인 만큼 이 책에는 숱한 반의어, 그리고 반대되는 상황들이 많이 나온다.
옳고 그름 / 정신과 육체 / 계획적인 사람과 즉흥적인 사람 / 확신과 불안 / 연기와 현실 / 충만과 결핍 / 더러움과 깨끗함 등이 그러하다. 위의 표현은 소설 속이 아닌 우리가 일상 속에서도 쉽게 마주하는 상황들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과 환경, 그리고 관계는 대게 반대되는 상황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겉보기에 더 낫다고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도 항상 모순이 있다. 그 모순된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뜨겁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교훈이다.
'모순된 삶, 그렇기에 더욱 방향키를 강하게 붙들어 매야 한다.'
이 책의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스토리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진진의 어머니와 이모의 대비, 주리와 진진의 대화 정도이다.
특히 진진의 어머니와 이모의 대비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 방향키를 놓지 않는 진진의 어머니와 유복한 삶을 살면서 점점 방향키를 놓게 되는
이모의 대비, 그리고 그에 따른 참혹한 선택까지.
그러나, 소설에서 주정뱅이인 진진의 아버지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식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표현은 너무나 섬세했기에, 딱히 꼬투리를 잡고 싶지는 않다.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내가 느낀 주요 문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문장은 책의 시작에 있으며, 책을 다 읽고 다시 앞장으로 넘어오니 눈에 가장 밟혔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p.9
안진진이 잠에서 깼을 때 내뱉는 독백이다. 가장 직접적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평범히 보내는 이 인생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탐구해야만 한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간다. 그 과정이, 그리고 그 결과가 모순적일지라도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그린북'이 떠올랐다. <그린북>에서의 백인 운전사 토니는 다소 무심하고 거칠어보일 수 있지만 흑인 피아니스트 셜리를 인종적 사회적 차별에서 벗어나 편견 없는 모습으로 바라본다. 내게 그 편견 없는 행태는 세상의 옳고 나쁨이 동시에 섞인 복합적인 상황이 많다는 걸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진진은 어찌 보면 토니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나오는 흑인 피아니스트 셜리는 세상의 모순에 반대하며 자신만의 품격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한다. 차별과 모욕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고 한 모습은 흡사 진진의 어머니를 닮았다.
내 삶에도 모순이 참 많다.
안될 걸 뻔히 알면서도 도전했던 일이 잘 풀린 적도 있었고, 되려 잘 될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유난히 풀리지 않은 적도 있었다. 준비되어있지 않을 때 절호의 기회가 날아왔을 때도 있었고, 마냥 열심히 준비했는데 기회조차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물며 내 삶의 외적인 부분에서도 모순은 차고 넘친다.
일례로 밝고 쾌활한 아이가 알고 보니 조실부모한 경우도 있었고, 건강하게만 보였던 친한 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갑자기 떠난 일도 있었다. 남들이 안된다는 사업에 도전하여 보란 듯이 성공한 사람도 있고, 당당한 차림새와는 별개로 막대한 빚을 안고 있는 또래 친구도 있다.
다시 한번 내 나름 뻔한 결론을 내보자면, 그저 한번 부딪혀보자는 것이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ps. 글을 쓰기 위해 모순을 다시 펼쳐서 참고하였다. 그 글을 보니 몹시 내 글이 부끄러워진다.
제목 : 모순
작가 : 양귀자
출판사 : 쓰다
페이지 : 307p
구매처 : 알라딘 대구 동성로점
읽은 시기 : 2025년 6월9일-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