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여섯이다. 대가족이라지만 이중 인간은 둘 뿐이다. 팔 년 차 부부와 고양이 네 마리. 북적북적하지만 부피로 따지자면 딱 삼 인 가구쯤 될 우리 여섯 식구다.
한 마리는 내성적이라 얼굴 보기 힘들다. 전설의 동물이라 불린다.
"나는 예전부터 전원주택에 살아보고 싶었어"
남편은 결혼 때부터 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었단다. 남편의 로망을 나열하자면 마당과 텃밭과 불멍과 바비큐 정도였을까. 그에 반해 나의 로망은 고양이가 뛰노는 작은 뜰 같은 것이었다. 물론 로망은 로망이었다. 로망은 번번이 현실 앞에 우선순위를 빼앗겼다. 신혼엔 2년마다 전셋집 구하느라 허덕였고,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고, 집은 언제나 판교와 논현- 두 직장 사이에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다람쥐와 함께 잣을 까먹었던 어느 한적한 캠핑장
먼 꿈은 일박이일 짜리 캠핑으로 목만 축였다. 주말은 너무 짧았다. 짐을 풀었다 다시 싸기에 바빴다.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했고, 남들 가진 건 다 가지고 싶었다. 몇 년 새 캠핑장비 개수는 늘고, 크기는 줄었다. 캠핑 메뉴가 대하와 한우 구이에서 돼지 카레로, 다시 짜장 라면으로 소박해질 때쯤 흥미를 잃었다. 밥을 먹으러 떠난 건지, 텐트 치기 체험을 하러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맥주 몇 잔에 잠든 남편 얼굴을 보며 홀로 넷플릭스를 즐기는 밤이 이어졌다. 다닥다닥 붙은 텐트들에서는 희미한 불빛과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것이 바로 난민 체험인가' '당장 짐 싸들고 집에 가고 싶다' 현타가 찾아왔고. 대한민국에 캠핑 붐이 일수록, 우리의 캠핑 놀이는 뜸해졌다.
우리에게 꼭 맞는 집을 찾을 수 있을까?
현실이 고단할수록 로망에 대한 열망은 커졌다. 지금까지 보러 간 집만 얼추 오십 채는 될 거다. 어떤 집은 너무 컸고, 어떤 집은 너무 못생겼고, 어떤 집은 너무 멀었고, 어떤 집은 너무 비쌌다. 무엇보다 집 한 채가 전 재산일(그나마도 은행 몫이 반) 대한민국 삼십 대 후반 부부에게 주택 구입은 너무나 큰 모험이었다. 집은 '사는' 게 아니고 '사는' 거라지만 손해는 보고 싶지 않았다.
평일에 쌓여있는 설거지통을 보면 과연 우리가 집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다. '마당 관리는 엄청 손이 많이 간다던데' 나는 소문난 조막손이었고, 남편은 본인이 내킬 때만 잘하는 스타일이었다. 우리 집 앞마당은 그가 열정적일 초반엔 꽤 자주, 나중엔 한 달에 한 번 꼴로 아름다울 것이 뻔했다.
볕이 잘 드는 우리집. 네모난 것 빼고는 제법 마음에 든다.
이런저런 걱정들로 우리는 여전히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는 편리하고 깨끗하고 네모나다. 우리는 적당히 행복했으므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냈다. 가끔 여행을 떠났고, 되도록이면 깨끗한 숙소에 묵었다. 그럼에도 어떤 종류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일상에서 도망치듯 누리는 경험은 마치 가짜 같았다. 명품을 좋아하지도, 값비싼 취미생활이 있지도, 호화스러운 해외여행을 즐기지도 않는 우리 부부. 그러면 우리들에게 어울리는 사치란 무엇일까.
고민 끝에 우리는 결정했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평생의 모험을. 코로나가 세계를 점령한 2020년의 어느 여름날, 그렇게 우리 부부는 여덟 평짜리 집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