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고 원했던 피오르드, 하늘이 선물한 날씨
시드니에서의 경험을,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벽 3시가 조금 넘어 시드니 공항 국제선으로 향했다. 공항철도를 타고 갈 생각으로 전날 오팔카드에 10달러를 더 채웠으나, 결국 20달러가 넘게 남았다. 시간대가 안 맞아 택시를 탄 것.
오전 비행기를 타고 3시간 만에 Queenstown Airport 에 도착했다. 사실, 날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한 달 전부터 모니터링하고 있었는데 매일이 흐리고, 비 오는 등 좋지 않은 날씨를 보였고 전날에 봤을 때도 역시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퀸즈타운 공항에 착륙하기 전부터 비행기에서 굉장히 멋진 뷰를 볼 수 있었다.
퀸즈타운에서도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해결했다. 이번 여행에서 모든 도시에서 1박당 숙박료를 거의 비슷하게 사용했는데, 퀸즈타운에서의 집이 내부적으론 가장 아쉬웠다. 무엇보다 추웠다. 하지만 이런 천혜의 환경을 바라보며 그리고 가까이 잘 수 있는 곳은 이 곳 밖에 없었으리...
퀸즈타운 도착 후, 곧 시내로 나갔다. 하늘 넓게 펼쳐진 비단 같은 구름은 햇빛을 가려 맑은 하늘을 다시 흐린 날씨로 만들기 충분했다. 이런 변덕스러운...
시드니나 퀸즈타운이나 새가 굉장히 많다. 작은 새도 그렇지만, 특히 큰 새들. 비둘기뿐만 아니라 오리들과도 공원에서 인사할 수 있다.
수상택시들과 가볍게 주변을 관광하는 보트형 크루즈선을 볼 수 있다.
사람들도 생각보다 굉장히 적고 아시아인도 굉장히 적었다. 아니 그냥, 사람이 적어 여유롭다.
퀸즈타운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이라서도 그렇고, 남반구라 한국이 여름일 때 겨울이다. 그래서 해가 더 짧다. 5시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냥 밤이고, 6시가 넘어가면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힌다.
실제 사람 눈으로 겨울에 오후 7시가 넘어 위 사진과 같은 뷰를 볼 수 있다는 당연한 상상(?)은 접어두는 게 좋다. 넘어지지 않게 발 앞이라도 잘 볼 수 있도록 최소한 휴대폰 플래시라도 필요할거다.
아, 내일은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보고 싶었던 피오르드를 보기 위해 밀포드사운드를 가는 날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설렌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05:30 을 조금 넘겨 일어나 씻었다. 아, 굉장히 춥다.
뉴질랜드 남섬의 피오르드, 그러니까 밀포드사운드를 보러 가기 위한 코스는 매우 다양하다. 개인이 차량을 렌트해 움직이는 방법, 대형 버스(코치)를 투어로 가는 방법, 소수 가족 혹은 인원만 챙겨 투어로 가는 방법, 경비행기나 헬기를 이용해 투어로 가는 방법.
길도 모르고 렌트는 너무 도박이다. 대형 버스는 루프가 글래스로 되어 굉장한 개방감을 주고 비교적 가장 저렴한 방법이나, 한 번에 이동해야 하는 인원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소수 인원만 챙겨 소형 버스나 밴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택했다. 가이드 아저씨가 옆에 지나가는 것들, 퀸즈타운을 설명해주고 점심으로 바비큐를 해준다. 여러 설명과 뷰포인트에서의 하차, 간단한 휴식 등을 포함해 밀포드사운드까지 5시간가량 소요된다.
따라서 돌아올 때는 피곤하니까 빨리 돌아오기 위해 경비행기를 빌렸다. 밀포드사운드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퀸즈타운으로 복귀하면 굉장한 피오르드 풍경을 항공뷰(Bird-eye)로 볼 수 있고 시간을 매우 단축시켜 대략 50~60분이면 된다. 물론 공항에서 집까지 바래다준다. 나는 차가 없으니깐.
오전 7시, 가이드 아저씨가 집 바로 앞으로 픽업을 왔다.
아... 근데... 비가 온다.
같이 가는 일행들은 총 12명. 죄다 미국인이다. 뉴욕에서도 오고, 텍사스에서도 왔다. 가족 혹은 노부부이다.
미국도 Hell States 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이지, 학생들의 힘듦은 모두 같은가 보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아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텍사스 가족의 막내아들이 "I have nothing interesting in my life" 란다. 인생이 그렇게도 재미가 없나 보다.
(안타깝게도 이 친구는 이런 정신을 놓을 수 있는 뷰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대략 4시간을 달려 11시, 어떤 장소에 멈춰 섰다. 어딘가 하니 미러 레이크(Mirror Lake), 거울 호수이다. 날이 맑으면 멀리 보이는 산까지 거울같이 맑은 물에 비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일 텐데, 개뿔. 굉장한 날씨다. 그래도 나는 사진을 담는다. 날이 나쁘면 나쁜대로, 하얀 눈에 덮인 풍경을 담아보았다.
진눈깨비가 굉장히 기분 나쁘게 떨어진다. 특히, 높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뷰 포인트에서 나무에 걸려있다가 떨어지는 녹은 눈덩이에 맞는 기분은, 굉장하다.
소중한 나의 카메라를 품 속에 품고 다니느라 추운 것을 잠깐 잊을 수 있었다.
점심은 양과 닭 바비큐로 해결했다. 굉장히 맛있었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란... 역시 환경이 마법의 소스다.
출발 후 6시간째, 계속 비가 온다. 밀포드사운드까지 5시간 걸린다고 했지만, 굉장히 스케줄이 러프하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점심 식사 후, 조금 가다가 멈춰 선다. 눈이 많이 와서 통행을 막았단다. 이건 또 무슨...
무한정 대기다. 아저씨는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라지만, 난 골수 한국인. 10분 이내가 아니면 금방이 아니다. 도로 정리가 될 때까지 1시간 대기했다.
더 말이 필요 없다.
진짜 어린 나이부터 보고 싶어 했던 그것을 위해 오는 발걸음이, 날씨 때문에 굉장히 무거웠는데.
도로 정리가 필요할 정도로 비, 눈, 진눈깨비가 번갈아가며 오던 하늘이 밀포드사운드에 도착하니 서서히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없던 종교가 생길 지경이었다.
오후 2시 45분 출발 예정.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크루즈도 럭셔리하게(?) 게스트 12명만 탑승 후 출발한다. 크루즈는 크지 않으나, 굳이 여객선처럼 채우자면 1-2층, 덱으로 100명도 여유 있게 태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밖이 너무 멋져 크루즈 내부를 촬영하지 않은 것이 살짝 후회되기는 하지만, 무제한 다과와 커피 무료. 뷔페를 운영하는 크루즈가 많은데 시간 아깝다. 밀포드사운드를 최대한 즐기도록.
(물론 2시간 조금 넘게 밖을 보느라 커피 2잔과 쿠키 네댓 개 먹은 것이 끝이다)
그리고 퍽 괜찮은, 넓고 안락한 패브릭 소파형 시트. 누워 가도 여유가 넘친다. 근데 그럴 이유도, 여유도 없다.
출발 30분이 지나니, 출발점은 보이지도 않고 넓디넓은 피오르드에 압도된다. 그래, 이 기분. 사진이 아니라 내가 눈과 피부로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꼭두새벽부터 우릴 책임져준 아저씨한테 외쳤다. "Gorgeous! We made it!"
아저씨도 이런 날씨 만나기 정말 힘들다며, 함께 자연경관을 즐겼다.
일단 이 폭포, 맞아봐야겠다.
물론 직접은 못 맞고, 튄 물 알갱이라도...
굉장히 시원하다. 옆으로 튀는 물줄기도 세찬 바람이 부는 비오는 날 같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높은 산과 아름다운 뷰. 아름다운 바닷물 색과 구름 걸린 산, 그 위로 푸른 하늘이 한 시도 놓치기 아깝다.
이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당분간 보지 못할 것 같다.
평소 볼 수 있는 물빛이 아니다. 굉장한 아쿠아틱. 짙은 비취색이라고 봐야 하나?
계속 감탄만 나온다.
한국에 있을 때 있던 모든 스트레스가 감탄으로 빠져나온다.
이번에는 카메라 대신 LG G5 로 촬영한 동영상으로 준비해봤다.
바람 소리가 꽤 크지만 현장의 느낌을 간단히 느끼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꾸준히 걷힌 구름은 숨겨두었던 파란 하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정말이지 건강한 공기로 몸 정화와 눈의 피로까지 모두 풀 수 있다. 흐린 날이었으면, 눈이나 비가 왔으면 진짜 아쉬웠겠다.
무슨 복을 타고났을까. 감사하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은 다른 크루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아니 보인다.
피오르드의 규모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이 사진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좌측에 작게 보이는 것이 크루즈다.
반면 협곡의 끝은 카메라에 담기지도 않았다.
지나가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나름 굉장히 편안한 자세로 보인다.
정말 멋있다.
텍스트보다는 미디어, 사진이다.
이 넓은 곳에서 다른 크루즈가 옆으로 가까이 지나간다. 아마 JUCY 여행사의 크루즈인 것 같다. 대중적인 퀸즈타운 여행사로는 JUCY 와 KIWI Discovery 가 유명한 것 같다.
굉장히 많이 보이고, 관광객들도 한 번에 많이 인솔한다.
옷이 두껍다.
퀸즈타운 그리고 밀포드사운드 날씨는 비슷하다. 한국은 지금 여름이고 사상 최악의 폭염을 지내고 있지만, 밀포드사운드는 춥다. 최고 온도도 영하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나의 머리는 세찬 바람에 날린다.
날이 좋다.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가면 된다.
아저씨한테 내려서 비행기는 어디서 타냐고 물었더니 오전 날씨가 너무 터프해서 캔슬됐으니 같이 버스타고 가자신다.
아, 이 곳에서 모든걸 갖진 못했다. 남들이 쉽게 겪지는 못할 변덕 후 최고의 날씨는 내가 가졌으나 비행기를 탈 운은 아니었나보다.
가이드 아저씨에게 돌아오는 길은 집에 내려주지 말고 퍼그버거를 먹게 시내에 내려달라고 했다. 집이 교통수단으로 7~8분 거리에 있어 교통비도 또 들고 귀찮아진다.
퀸즈타운 햄버거 맛집.
퍼그버거 되시겠다.
시내에 도착하니 밤 9시 30분이다. ㅋㅋㅋ
오전 7시에 출발해 밤 9시가 넘어 돌아오다니. 14시간의 대장정. 가이드 아저씨가 정말 수고해주셨다.
지식도 굉장히 풍부하신 가이드 프로이셨다. 가는 데에만 5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3시간 반 이상은 퀸즈타운과 풍경, 그리고 모든 것들을 설명해주는데 쏟으셨다. 물론 돌아올 때도.
다만 발음이 너무 어려워 제대로 알아는 들었을까 싶다.
너무 배고파 버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밤늦은 시각이라 20분도 기다리지 않았고 맛있다. 새벽까지 운영하니 퀸즈타운에 갔다면 걱정 말고 꼭 먹길.
집엔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참고로 퀸즈타운에서는 버스보다는 택시를 추천. 도착지를 말해주면 버스 기사가 요금 책정 후 그 자리에서 티켓을 주는데, 퍽 비싸다. 혼자가 아니라면 많이 차이도 안나니까 그냥 택시를 타자. 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