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나이지만 최근들어 야구를 소재로 한 '스토브리브'라는 드라마를 매우 흥미롭게 시청하고 있다. 스토브리그(Stove League)라는 용어는 프로야구 시즌오프(season-off) 때 구단별 선수들의 연봉 협상, 또는 다음 시즌을 대비하는 팀의 역량 강화에 대한 트레이드, 훈련 등에 대한 가십에서 유래하였다. 형식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표방하고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조직 내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갈등을 다루는 방식을 이 드라마에서는 '정말 더럽게 정이 안 가지만 더럽게도 일 잘하는 사람’인 백승수 단장을 통해 풀어간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10화 중
엊그제는 구단주 대행을 하는권경민(오정세)으로부터“넌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냐!”하고 분노 섞인 이야기를 들은 백승수(남궁민)가 “말을 잘 듣는다고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던데요. 후회합니다, 그때를”이라고 받아치는 모습이 나왔다. 이어 백승수는 말을 잘 들으면 자기들 손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부당한 일을 계속 시키는 병폐를 지적하며'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말을 잘 안 듣더라도 일을 잘하면 그냥 놔두더라.'는 사이다 발언을 한다. 리더의 말을 잘 들으면 보상을 얻는 것이 아닌, 마냥 호구가 되는 세상이라니무언가 씁쓸하다. 속 시원하면서도 씁쓸해진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다가 얼마 전 세바시에 들었던 한 강의가 생각났다.
강의에서는 '별주부 신드롬'을 소개하며,"함께 용궁에 가면 높은 벼슬을 주겠다."는 자라의 속임수를 알아챈토끼가 간을 다른 곳에 놓고 왔다는 비유를 빌어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의도적으로 영혼을 놓고 온다는 요즘 세대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사실 이 같은 원인은 시키는 일을 잘 해내도 본전일 뿐아니라, 조금이라도 상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망신을 주는 좋지 않은 조직을 경험한 요즘 세대의 뼈아픈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진짜 영혼이 없어 상사의 지시를 온전히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받기 싫어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할 수밖에 없게 된 (머리가 아닌) 감정의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세바시 "소통과 공감을 잘 하려면 에포케를 기억하세요"
사람들은 누구나가 내가 맡은 일을 잘 수행하고 싶은 소망과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과 원활하게 지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따라서 조직 내에서 인격적인 관계가 아닌, 기계의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면 누구나 일에 대한 몰입과 충성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사람을 길러내고자 하는 것이 일터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기에, 주어진 목적달성을 위하여 조직을 효과적으로 운영해나갈 수 있는, 따뜻하면서도 지혜로운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일터에서는 행동 유도성(Affordance)이라는 개념 적용이 필요하다. 행동 유도성이란, 주로 대상의 어떤 속성이 다른 대상으로 하여금 특정한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거나 특정 행동을 쉽게 하게 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쉬운 예로, 세로로 길게 만들어진 문고리는 우리로 하여금 문을 잡아당기게 유도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또다른 예로, 아무것도 없는 방에 흔들의자와 얌체공이 놓여 있고 이방에 누군가 들어간다면, 흔들의자에 앉아 공 튀기기 놀이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를 우리의 일터에 적용한다면, 구성원의 조직에 대한 깊은 헌신과 몰입, 높은 성과를 기대할 때 리더는 비윤리적 언행, 진정성 없는 관계, manipulation 등의 행동을 보이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리더의 꼰대적인 언행 불일치의 모습은 구성원들의 냉소적인 태도와 행동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말이 있다. 기대하는 만큼 리더 스스로도 자신이 기대하는 것과 동일한 신념과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하며,이러한 리더의 본이 되는 모습을 통해 구성원들은 조금 더 지지적인 환경에서, 조직 내에서 만들어진 배려의 분위기에 따라 긍정적인 행동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