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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맞는 여행 찾기

여행을 대하는 나만의 방식을 이해하기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내게 해외여행이란 갑갑한 현실의 도피처 기능을 해왔는데, 3년간 국내를 벗어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사뭇 두려워졌다. 그래서 그간 선택지에도 없던 패키지여행을 결정하게 됐다.


   내가 패키지여행을 꺼려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모르는 사람들과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배경도, 성향도 예측할 수 없는 낯선 이들과 여행지에서 머무는 동안 하나의 공동체로서 묶인다는 것은 시작도 전부터 피곤한 일이다. 둘째, 나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짜여진 일정대로 먹고 자고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직장생활만으로도 고단한데 여행마저 빽빽하다 쉼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의 업무처리처럼 느껴진다.


여행에서 가장 설레이는 순간은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인천공항 출국 전이지 않을까?


   그리고 깜빡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는데 패키지여행에서는 간과하기 힘든 가이드의 영향이다. 그(녀)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또 어떤 컨디션과 직업 가치를 지녔는지에 따라 똑같은 일정이더라도 전혀 다른 하루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젊고 패기 넘치며 주관이 강한 가이드는 스스로 생각한 최고의 일정으로 이끌고 싶어 한다. 길지 않은 시간 축적된 자신만의 데이터에는 그게 가장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 많은 스팟을 찍고 다니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 느슨한 일정을 추구하는 연륜 묻은 장년의 가이드다. 그(녀)는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몇 번의 다툼과 피드백을 통해서 결국은 자신이 생각하는 게 모두에게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전자와 같은 기 넘치는 가이드였다. 열정 그 자체였던 가이드는  빨리빨리 움직이고 많은 정보와 지식을 패키지여행에서 제공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관광객들이 오늘 방문한 이 나라, 이 도시에 다시는 여행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채, 더 많은 볼거리와 옵션들을 추천했다.


  그러나 장기간 휴가를 내겠다고 여행 오기 전 한 달 내내 야근과 주말근무를 반복했던 내게는 가이드의 빡빡한 이끎 이 막혔다. 나는 결국 강요된 옵션에서 몇 가지를 자체 포기하고 정되어 있던 전망대 투어가 아닌,  골목길을 누비며 나름의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뜨거운 정오에 시원한 파라솔에서 여유있게 메뉴를 고르는 부러운 여행객들
한꺼번에 몰려다니지 않으니 더 선명하게 들어오는 스페인 골목


  문득 나는 이런 의문이 생겼다. 각자의 삶에서 여행이라는 것은 무엇을 위한 일까? 국내에서  맛볼 수 없는 이색적인 음식들을 경험해 보기 위한 것일까, 여행지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보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여행을 자랑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TV에서 내가 다녔던 장소들이 나올 때마다 추억하기 위한 것일까..


  주로 혼자, 또는 둘이던 여행에 익숙한 나에게,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패키지 여정 중에 왜 나만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 건지 괜히 혼란러워졌다.


플라밍고를 보기 위해 모인 수많은 관광객들

  

  의 복잡한 마음은 플밍고를 관람하는 대공연장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확실해졌다. 사실 스페인까지 와서 플밍고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육신이 지친 내게도 아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꺼이 옵션을 추가했데 공연장에 도착하자마자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 상상 속 플라밍고 공연은 소극장에서 공연진의 호흡을 더 가까이 느끼 것이는데, 현실 내 앞에 앉은 관객들의 메뉴를 관망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그저 "나 스페인 가서 플밍고 보고 왔다!"라는 것만 남은 순간이 된 것이다.


  이번 여정에서 나는 띠동갑인 어르신과 잠깐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 대화를 통해 각자가 지닌 여행의 가치와 의미는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두가 아는, 그리고 모두가 촬영하는 그 장소에서 똑같은 것을 보고 동일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스페인에서의 플라밍고 관람이나 가우디투어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를 방문하거나 관광객이 붐비지 않는 로컬인들만 가는 장소에서 처음 보는 메뉴를 먹어보는 것이 여행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 늘 있는 호텔 조식이 싫다.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 나니 패키지여행에서 만난 이들이 저마다 여행을 즐기는 모습들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어떤 이들은 한국음식이 그립다며 매일 저녁마다 컵라면을 끓여 먹으며 여정의 회포를 풀었고,  어떤 이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한 번 쓰윽 보고는 사진에 담으며 행복해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곳에서만 남길 수 있는 소중한 한 컷을 남기기 위해 부지런히 사진을 검수했다.


알카사바에서 바라본 그라나다 전망


  처음엔 저들은 왜 돈 들여 여행 와서 한국 음식을 찾고, 인스타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날 무렵,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모두가 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과 다르기에 구별되는 나만의 여행의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복한 여행은 누구나 반드시 봐야 한다고 말해온 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찾아가는 것 닌듯하다. 에게모든 일상과 단절된 채, 낯선 곳에서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고 온전히 그 순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인 셈이다.


여행의 끝자락에 있는 마지막 날 저녁은 아쉬움이 더해져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 폭염과 일상에 찌들어 지친 이들에게, 이번 휴가만큼은 여행을 통해 누리고자 하는 그 어떠한 것이든 충만히 느끼게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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