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유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빽언니 May 03. 2019

남의 아들

모든 아들이여 행복하라

오전부터 한 친구의 생일이라는 카톡 알리미가 눈에 띄었다. 오지랖 넓은 나는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 친구인 그의 생일을 동아리 OB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에 알리고 여럿의 축하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동아리에서 알게 된 스무 살 시절의 친구끼리여서 나이를 먹어도 편안하다. 쉰이 넘어서 애들도 아니고 뭔 생일이냐고 멋쩍어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가 아는 추카추카 이모티콘을 여러 개 연달아 날리고 마침 한국에 와 있던지라 축하도 할 겸 전화도 한통 했다.


" 아침에 미역국은 먹었어? "

" 아니 오늘 애들 둘 다 시험이라고 마누라가 미역국 안 해 준대 헤헤헤 "


친구가 미역국을 못 먹었을까 봐 물어본 것도 아니었고 의례히 하는 말이라 그냥 인사차 던진 말이었는데, 아내가 애들 시험이라고 미역국을 안 끓여주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친구는 아들만 둘인 외벌이 가장으로 열심히 사는 개인사업자다. 동아리 친구들 사이에서도 성실하고 착하기로 소문난 그는 몇 해 전엔 위암 수술도 받고 힘든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 그래? ㅋㅋㅋ 넌 네 어머니 아들이니까 남의 아들인데, 두 아들은 니 와이프의 아들이잖아. 남의 아들 생일보다 내 아들 시험은 중요하다 그런 거겠지 하하하 "


내 말에 친구는 맞는 말이라며 크게 웃었다.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일 년에 한 번 있는 남편 생일이 돌아왔는데도 아들의 평소 시험일과 겹친다고 미역국도 안 끓이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남의 아들이 내 아들들 먹여 살리느라 항상 애쓰고 있기도 하다는 건 잊었나? 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그의 아내에게 내가 괜히 쪼금 섭섭했다. 그냥 미역국 조금만 끓여서 애들 주지 말고 남편만 주면 되지 않았을까 싶은 '시누이'같은 심뽀가 쓸데없이 잠깐 발동했다고나 할까.


열심히 사는 그가 가장으로서의 대접은 언제 받을까 궁금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까짓 미역국. 생일 다음날 먹으면 어떻고 다음다음날 먹으면 어떠랴. 아내와 같은 생각을 하며 그가 마음 평화롭고 기분 좋다면 그것 또한 그가 원하는 행복일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남의 아들 주제에 네가 이해해야 한다'는 삐딱한 유머로 드립을 쳐대며 그의 귀빠진 날을 응원했다.


내 아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다각도로 애쓰는 남의 아들(남편)의 고마움을 그의 아내도 생각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남의 아들과 아들을 함께 데리고 사는 입장이라 무척이나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남의 마누라인 내가 친구랍시고 시누이처럼 감나라 대추나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미역국도 안 해 주냐며 주둥이질로 나불댈 건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야 알아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

쉰 두 살 생일 미역국은 네 말대로 야근하는 동안 김밥천국이라도 가서 사 먹으렴



매거진의 이전글 남자들이 해 주는 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