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딸한테 일부러 피아노 같은 거 안 가르쳤어요. 나중에 지 남편이 돈벌이라도 못하게 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고 피아노 레슨 같은 거 하면서 살게 될까 봐서요”
이 무슨 개떡같은 논리인가? 할 말이 없었다. 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물었다
“그럼 지금 피아노 레슨 하는 피아노 선생님들은 남편들이 돈벌이 못해서 어려워져서 하시는 것 같으세요?”
“그럼요. 안 그러면 왜 그런 걸 하겠어요?”
“ 피아노 레슨은 아무나 하나요? 그것도 전공이라도 해야 하는 거죠.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고 가르치는 일을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하시는 분도 많죠.그런데 가난하다는 이유로만 일을 하는 건 아니죠.”
“ 그래도 남편이 돈 많이 벌어다 주면 그거 쓰면서 사는 팔자가 최고예요”
“ 하하하 만약에 따님 남편이 돈 못 버는 데 피아노도 못 쳐서 레슨 같은 것도 못하고 그러면..... 그런 재주도 없고 아예 가계에 도움도 안 되겠네요?”
“ 그렇다고 여자가 나서면 남자가 돈을 안 벌어요. 안이하게 논다고요. 돈은 무조건 남자가 벌어야 해요”
“ 여자는 돈 벌면 안 돼요?”
“ 마누라가 나서서 돈 안 벌어도 되면 좋다는 거죠 ”
“ 요즘은 딸들도 거의 다 대학공부 시키고, 유학도 보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는 소리도 당연하게 하고들 살잖아요?”
“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애 낳고 기르고 공평하게 살면 평등한 거죠.”
굳게 믿는 확고한 그녀만의 철학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딸은 능력 있고, 하나님을 믿는 남편을 만나야 하는 게 전제조건이고, 아내로서 사랑받고 애들 잘 기르는 현모양처로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게 기르겠다면서, 더럽게 무능력하게 길러서 시집보낼 생각 하면서 바라는 건 오지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엉뚱한 논리가 너무 굳건하고 당당해서 카리스마가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모든 사람이 사물과 상황을 똑같이 대하는 건 아니니까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자신의 딸은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희망을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이려니 하고 이해할 수도 있을까 싶었지만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딸은 아무 기술이나 재주도 장착하지 않게 키운 채로 결혼을 시키겠다니. 여자 생식기만 가지고 결혼을 하게 하겠다는 게 요즘 같은 세상에 엄마라는 사람이 할 소리인가? 그것도 나보다 나이도 어린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여자다.
이런 어머니가 이렇게 가르쳐서 기른 딸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고 진짜 그렇게 살게 될까? 만일 그 딸의 인생관이나 태도와는 상관없이, 살다 보면 인생이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흐를 때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어, 엄마의 가르침과 다르네? 내가 안 벌어도 이 남편눔이 돈을 요꼬라지로 밖에 못 버네? 에고고 피아노라도 잘 배어둘 걸 그랬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
남자들이 다 해주는 거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충격과 준비되지 않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고달파질 텐데 말이다. 남자를 닦달해도 기다려도 안 되면 다른 남자에게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어머님의 가르침대로 남자 갈아타기를 해야겠다는 구상을 떠 올리려나? 지들 모녀가 그렇게 살겠다면 누가 어쩔 수도 없겠지만.....
물론 준비되지 않은 여자들도 남편의 실직이나 경제적인 위기에서 대처를 해내며 사는 것도 봤고, 내가 너무 비약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나도 안다.그렇다고 저런 생각을 가지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한 아줌마의 딸이 무능력한만큼 더럽게 못 살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난 다만 기껏 딸자식 낳아서 표면적으로는 정성 들이고 밥 해 먹이고 돈 들여서 학교도 보내면서,
요즘같은 세상에 소중한 딸자식을 좀 더 역할을 하는 사회인으로 멋지게 키워내 보겠다는 생각을 안 한다고쳐도, 고작 일찌감치 남자의 사랑을 받고 밥 얻어먹는 '계집'으로만 키우겠다고 결정한 여자에게 화가 나고 심술이 나서 비약을 해댔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난 한국의 어머니들이 더 이상 딸을 그런 식으로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기게 그런 식의 안이한 행복추구는 차마 응원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