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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유 일기

새외숙모는 골룸

사람 착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by 빽언니

큰외삼촌과 둘째 외삼촌(호 삼촌)이 안보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혼한 호 삼촌이 환갑이 다 되었을 때 함께 살게 된 여성에 관한 악평 때문이었다. 큰삼촌 내외가 동생인 호 삼촌에게 "어디서 그따위 여자를 데리고 왔냐?"라고 말하며 싸웠다는 거다.


어찌 된 일인지 이미 위 아랫동네에서 오가며 지내던 동서지간이라 그랬겠지만 호 삼촌의 여인이 그 얘기를 알게 되어 "아무리 형님 내외분이지만 그렇게 심한 말씀을 하시는 건 아니라고 본다"라고 큰 외숙모에게 항의를 했다는 거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를 엄마에게 들은 나는 큰삼촌 내외가 지독하게도 못되게 월권을 휘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혼도 아니고 이혼한지도 한참이 지났고, 힘들게 혼자 남매를 키운 호 삼촌이 늙으막에 띠동갑의 어린 여성을 만나서 같이 살고 있다면 양팔 양다리 다 들고 환영하고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난 며칠 전에 드디어 처음으로 호 삼촌의 그녀를 만나고 첫눈에 큰외삼촌이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호 삼촌을 내 사랑이라고 폰에 저장해둔 그녀는 64세인 삼촌보다 더 늙어 보이는 52세였다.

연예인에 비유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과 같은 외모였다.


심한 당뇨로 머리카락이 거의 없음에도 아무것도 두르지 않았고, 마스크를 벗고 식사를 할 때 보이는 그녀의 잇속에는 앞니가 위아래 모두 없었다. 느리고 어눌한 말투와 이가 없어서 그럴 것 같은 빈틈 많은 발음이 듣기가 참 거북했다.


호 삼촌은 이 여성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이미 5년째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여자를 만났지? 나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외모는 충격적이었으니 저녁에 곧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조카인 내가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데 그녀는 울 엄마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자주 놀러 온다고 했다.


"애가 생긴 건 그 지경인데 참 사람이 착해 "라는 건 울 엄마의 평이다.


난 더 알고 싶었다. 그녀와 단 둘이서 며칠 후에 다시 만났다. 둘이서 신도림현대백화점에서 아이쇼핑도 하고 세일하는 3만 원짜리 티셔츠도 사고, 당뇨인 그녀에게 맞춰 흰밥은 피해서 꽁보리밥 주꾸미 정식도 먹었다.


그녀는 참 착했다.

이 사람은 참 착한 사람이겠다 싶은 사람을 오래간만에 만난 느낌이었다.

머리가 나빠서 악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녀는 모자란 사람도 아니었고 그저 첫 결혼으로 받은 상처가 큰 사람이었다.


중매로 만난 전 남편은 자기 얘기를 들어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호 삼촌은 끝까지 모든 얘기를 들어준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호 삼촌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듯했다.


몇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자 내 눈에는 그녀의 속이 텅 빈 헤어스타일과 앞니 다 빠진 잇속이 눈에 별로 거슬리지 않았고, 새는 건지 넘쳐흐르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던 그녀의 발음이 개떡같이 말해도 난 찰떡같이 다 잘 알아듣고 있었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밥 얻어먹던 시절에 함께 자란 오빠 같은 호삼촌. 오래전 이혼하고 쓸쓸하게 지냈을 텐데 호삼촌은 자신의 딸이 대학을 졸업하면 꽤 착한 여자 골룸과 작은 혼례를 치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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