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우연히 보험 회사에서 전속 보험설계사로 일하게 되었다. 벌써 두 달째다. 나름 너무 즐겁다. 매일 전문 훈련을 받으며 배우는 게 참 많았기 때문이다. 나와 내 가족부터 의외로 보험을 잘 몰랐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선 내 가족의 보험을 새로 리모델링했다.
보험료가 새는 보험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수확이 크다. 가끔 보험을 리모델링해 주겠다는 광고전화를 받기도 했는데 이제는 "제가 보험설계사예요 ㅎㅎ"라고 말을 하면 홍보전화를 무작위로 걸어온 측에서도 같이 웃으면서 전화를 부드럽게 끊는다.
나는 회사에서 그리 좋아하는 설계사는 아닐 것이다. 보험료를 많이 내게 설계를 해야 수당도 많이 나오고 회사 측에서도 먹을 게 많은 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꼭 필요하거나 자주 걸리는 병이나 사고를 대비한 것 말고 이것저것 자꾸 추가를 못하겠다.
최근 지인이 월 보험료가 너무 부담스럽다기에 자세히 보고 항목을 몇 가지 줄여줬다. 그가 내민 두꺼운 청약 설명서를 다 읽어보니 중복되는 보상들이 꽤 많았다.
보험료를 많이 내고 싶지 않은 그를 도와서 보험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뇌혈관질환 진단비를 받는 걸로 설계를 했다면, 굳이 뇌출혈 진단비와 뇌졸중 진단비를 각각 더 추가할 필요는 없다. 뇌혈관 진단비 안에 두 가지 (뇌출혈과 뇌졸중)는 포함되기 때문이다. 보험을 배우기 전에는 이런 걸 잘 몰랐다. 수술비도 종류대로 다 집어넣어야 좋은 줄 알았는데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124대 질병수술비 정도만 추가하면 더 이상 필요도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나쁜 보험은 없다. 다만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보험료 내느라 매월 부담을 느끼는 액수라면 그건 나쁜 보험이다
병에 걸리지 않으면, 사고가 나지 않으면, 보험금을 타 먹을 일도 없는 건데...
보험은 걸려야 보장받는다.. 걸려야...
이것저것 다 필요한 것처럼 추가해서 설계를 해대면 보험료는 부풀어 올라서 매월 꼬박꼬박 돌아오는 압박감 덩어리가 될 뿐이다. 결국 중간에 해약을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보험료는 소박하게 내는 게 좋다. 감당할 수 있는 액수로 꾸준히 지속적으로 유지를 해야 결과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좋은 보험인 것이다.
모든 걸 보험에 의지를 해서는 안된다.
만일에 대비했던 보험으로 보험금을 타서 조금 도움을 받았다는 정도면 되는 거다. 나 자신도 그렇게 하고 있다. 아내가 죽고 사망보험료 타서 팔자 고쳤다는 뉴스는 가끔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의아한 몇몇 사람들 정도다. 사건에 휘말린 애매한 보험사기사건들이 보통 그런 류의 것들이다.
적은 비용으로 가성비 좋게 보험에 잘 가입하는 방법을 나름 알아버린 나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지인들에게 내가 보험일을 하게 되었다고 알렸다. 그런데 의외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난 알려줄 게 많은데 말이다.
내가 일하는 보험회사 육성팀장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미 내 지인들은 보험에 관해 새로운 걸 알려줄 것처럼 말하며 새 보험을 권유하는 사람을 나 말고도 너무 많이 만나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애매하다. 물론 나도 지인들이 어떤 보험에 들어 있나 보장은 잘 받을 수 있게 가성비 좋게 가입되어 있나를 분석해본다. 그리고 넘치면 말해주고 부족해도 말해준다. 부족하다면 나에게 보험을 가입하라고 당연히 말해준다.
넌 뭐가 부족하니까 다른 설계사에게 가입하라고는 말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ㅋㅋㅋ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다 보니 내 진심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보기에 나는 그저 보험 아줌마였다 ㅎㅎㅎ
나는 좀 다르다는 걸 알려 줄 기회도 만나기 어렵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하나도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보험일이라는 게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