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송혜교와 엄청난 연기자들
학폭은 현재진행형
넷플릭스 새 시리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행하는 사적 복수를 그린다. 인기 로맨스 드라마의 최고봉이었던 ‘미스터 선샤인’, ‘도깨비’, ‘태양의 후예’ 등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신작이다.
화장기 없는 단발 생머리의 무미건조한 표정의 문동은(송혜교 분)이 학교폭력 가해자 박연진(임지연 분)등에게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담담하게 친구에게 쓴 편지를 읽어내는 듯한 내레이션으로 전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전개되어 나간다.
더 글로리 / 넷플릭스
‘더 글로리’는 파트 1·2로 나뉜 16부작으로, 지난 30일 공개된 파트 1(1∼8부)에는 학창 시절 문동은 이 당한 가혹한 폭력과 성인이 된 문동은이 부와 권력을 갖춘 가해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차곡차곡 복수의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담겼다.
고데기로 몸을 지지고, 목을 조르고, 강제로 입을 맞추고 춤을 추게 하는 박연진(임지연 분) 무리의 폭력의 잔인함은 보는 이들의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시청자들의 분노를 유발한다. 문동은의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그동안 복수를 위해서 용의주도하게 이렇게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트 1의 8부작이 채워졌다.
반면 복수를 위해 이용해야 할 자들을 쥐고 흔들 비밀을 쉽게 손에 넣고, 가해자들은 제 발등을 찍듯 그리 깊어 보이지 않은 함정에 쑥쑥 빠진다는 점에서는 복수극 장르물 특유의 긴장감은 좀 떨어진다.
극 중 가해자들의 선두급인 박연진보다 더 꼴보기 싫은 캐릭터가 문동은의 고등학교 담임(박윤희)이다. 학창 시절 마음의 상처를 준 선생으로서 누군가는 한 번쯤 만났을 법한 말도 안 되게 편파적인 나쁜 선생이다. 그가 장학사가 되려고 이미지 관리를 하는 자기 아들의 방임으로 죽어가는 모습은 꽤 의외였다. 그러나 우연이 너무 많고 엉성한 개연성들이 몇 가지 있다고 한들 몰입감을 방해할 정도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넷플의 미덕은 작품 나오는 날 몰아보는 것’이다. 넷플릭스에 한꺼번에 공개한 8부작을 한 번에 달려서 보기에는 충분히 훌륭한 연출력(안길호 감독)이긴 하다.‘더 글로리 ’ 파트 2 가 3월에 방영되어 폭풍 전개가 펼쳐질 수도 있지만, 파트 1만 놓고 보면 이렇다 할 반전 요소가 없다 보니 클라이맥스 없이 밋밋하다.
가해자들과 대조되는 피해자들의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연대는 얼마나 공고할지, 이들이 파트 2에서 문동은의 복수에 어떤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우리는 이미 ‘친절한 금자 씨’나 ‘올드보이’ ‘돼지의 왕’에서 준비된 복수를 철저하게 끝내는 주인공들을 봐 왔다. 3월에 방영될 파트 2에 거는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벌써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연신 매스컴에서 호불호가 다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성공한 드라마이긴 한 것 같다.
고급지지는 않지만 혀끝에서는 항상 맛있어서 도무지 끊을 수가 없는 MSG 화려한 인스턴트 라면 같은 맛있는 드라마다. 비주얼, 영양가 좋다고 해도 맛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문동은의 복수는 가해자들 사이에 균열을 만들며 시작된다. 괴롭힘의 대상을 구심점으로 뭉쳤던 가해자 무리는 쉽게 와해하며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며 서로가 얼마나 밑바닥 인성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서로에 대한 욕망을 지닌 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한다.
반면 혼자였던 문동은에게는 "같은 편 먹고 싶어요" 라며 가정폭력 피해자인 강현남(염혜란)이 나타난다.
‘너를 도와줄 테니 대신 남편을 죽여달라’는 조건으로 문동은 학폭가해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오기로 한 계약을 맺는다. 강현남(염혜란)은 가끔 명랑하기도 한 좋은 사람이다.
"제가 원래 명랑해요. 왜요? 맞고 사는 년이라고 항상 우울할 줄 아셨어요?"
가끔 명랑한 강현남은 밥은 챙겨 먹으라며 구운 계란이나 김치를 건네며 문동은을 챙기는 첫 어른으로 등장한다. 사이코패스에게 살해된 부친에 엮인 사연이 있어 보이는 주여정(이도현)은 문동은을 8년 동안 기다리는 한결같은 연정을 보여준다.
특히 문동은과 강현남은 극에서 보이듯 "도와 달라"는 외침에도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학폭을 줄기차게 당하고 있음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도 ‘친구들끼리 한 대 정도 칠 수도 있지’ 라며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학폭과 가정폭력은 ‘그 집구석 사정일 뿐’이라 외면당하며 먹먹하게 멍들어가는 강현남(염혜란)의 드라마는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선과 악의 대립으로 끌고 가 다소 단조로운 느낌을 주지만, 송혜교와 악연들의 절제되고 디테일한 연기력이 극에 미묘함을 더해 흥미를 높인다.
포브스는 ‘상처 입은 송혜교, ’더 글로리‘로 K-복수극을 이끌다’라는 제목의 드라마 리뷰를 통해 송혜교의 미묘한 연기가 가해자에 대한 복수에 집착하는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로맨스퀸이기만 한 줄 알았던 송혜교는 원래 이 정도 연기는 가능한 내공이 있는 프로였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