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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유 일기

아물지 않는 생채기

왜 자꾸 덧이 나지?

by 빽언니

남편은 내가 아무리 아파도 뜨거운 국물하나 끓여줄 인간이 못된다. 라면이나 겨우 끓이는 지라, 다른 요리는 거의 못한다. 그렇게 길러진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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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스테미너 딸리는 느낌에 맥을 못 추겠다. 떡국을 끓이면서도 휴지로 코를 연신 풀었다. 콧물과 가래가 이렇게 많이 생성되어 나오게 되다니.. 어서 뜨거운 국물을 마시려면 날 위해 기를 쓰고 떡국을 끓여야겠다 싶었다. 자급자족으로 사는 고단함. 남편이 옆에서 냄새 좋다며 출렁쭐렁 따라다니길래 한 그릇 떠 줬더니 맛이 좋았던지 "저녁에도 떡국 먹어도 되겠네" 란다.


드라마에서 처럼 "아줌마, 뜨거운 국물 좀 끓여줘요" " 네 사모님" 하는 삶을 살아볼 일은 절대 없어 보이는 내 팔자. 콜록거리면서도 아픈 몸 질질 끌고 설날아침에 떡국 끓이는 내 팔자를 받아들이려니 더 화딱지가 나서 시가에 전화 한 통 하기 싫었다.


내가 당신 아들 탓에 고생이 이만저만 장난 아닌 것 아닐까요? 내 안부전화를 받을 자격이 있는 이가 누구인가?

결혼초부터 시엄마가 날 너무 함부로 박대한 혐의도 있으니 내가 쉰이 넘고 시엄마가 팔순이 넘은 지금. 같이 늙어가는 판국이라 해도 난 시엄마가 여전히 편치 않다. 그녀의 아들을 반품하지 않고 여태 끼고 살아주고 있다는 현실에 시엄마는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


중국에 살고 있으니 설이나 명절에 시엄마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고들 하겠지만 마침 한국에 있었다고 한들 전화도 않고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만정 떨어지는 남편이지만 내가 선택한 책임을 지느라 무르지 않고 꾸역꾸역 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부모의 갑질과 망발까지 내가 옴팡 뒤 짚어 쓰고 살고 싶지 않아 거리를 둔 지 여러 해다.


최근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데 부쩍 나를 궁금해하고, 자주 만나자고 드는데 그런 시부모들에게 적응이 안 된다. 나이 들어서 갑자기 친절해진 시부모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결혼초에 푸대접받은 내 모습이 참 오래 나 자신의 기억에 생채기로 남아있다. 그 생채기는 아문 것 같았다가 다시 덧이 난다.

엄청 잘난 아들 덕을 다 내가 보고 사는 줄로 착각하고 있던 시엄마의 아둔함과 오만함으로 여러 번 나를 내쫓으려 했으니 이십여 년 전 일이라고 해도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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