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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언니 Dec 07. 2021

내가 널 버리지 못하는 이유

외로워서...그래도 넌 사람이라 강아지 기르는 것보다는 나아야 하는건데


하얗고 예쁜 쓸만한 쓰레기통을 누가 버렸다

사이즈가 커서 쌀통을 버렸나 싶었더니

발로 눌러서 뚜껑을 열 수 있는 기능의 쓰레기통이었다


보통 발로 누르는 기능이 고장이 나면 쓸모가 없어지는 데

버려진 쓰레기통은 그 기능도 멀쩡했다


왜 이렇게 멀쩡한 걸 버렸을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깨끗하고 쓸모가 남아있는 물건을 버리는 걸까?0


난 집으로 가져다가 샤워기로 깨끗이 닦았다

물기를 다 말려서 비닐까지 넣어두니 예뻤다

참 잘 줏어왔구나.... 뿌듯했다


저녁에 남편이 와서는

뭐냐고 묻기에 멀쩡한 거 누가 버렸기에 줏어왔다고 했더니

난리 난리를 친다


남편 : 남이 버리는 건 왜 자꾸 줏어오냐?..

나 : 남이 버린것에 촛점을 맞출 거 없다. 쓸만한 거라 줏어온거다

그게 자기한테 뭐가 해로워?


남편: 자기엄마도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던데 ...

자기가 자꾸 고물 줏어온다고 ..그냥 고시원접고 고물상이나 차려~!

(직업도 없는 남편 때문이었다 , 아침먹고 갈 때 있으라고 난 고시원을 차렸다)


나: 우리가 뭐 지금 떼돈 벌면서 사냐?

(너는 돈도 못 벌어오는 게 ...니가 돈 잘 벌어왔으면 나도 돈 주고 샀다 라고 말해야했다)


난 언제나 그렇잖아?! 이상한 거 가져 온 것도 아니고 아직 쓸만한 건데

내가 너의 못 고치는 습관들 때문에, 평생 짜증나는 거 일일이 다 말해줄까?

(돈도 못 버는 게..뭔 말이 많아? 라고 말하고 싶었다)


너 자살하고 싶어질 걸? 엄청 많아.. (돈도 못 버는 게 나가 뒤져라)

내가 너 존중하고 참고 사는 거니까 너도 나 존중하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라

(너 우스운 거 일일이 말하지 않고, 불쌍해서 바가지 안 긁는거니까 .주제파악 해라)


지난 달에는 넓은 밥상이 버려져 있기에 줏어왔다. 너무 잘 쓴다

너무너무 멀쩡한 밥상은 친구들이 왔을 때 펴고 상차림하기에도 크고 좋았다.  


쓸만한 건 다 줏어오는 나

그렇다고 매달 그러는 것도 아니다

진짜 멀쩡한 게 버려져 있을 때만 그러는 거다




잘 버리지도 못하는 나. 구질구질한가?

알뜰하게 사느라 애쓰느라 낭비는 없다


아마 나의 이런 성향 덕분에
다른 여자들 같으면 쓸모없다고 이혼해 버렸을 남편을 
나는 여태까지 그냥 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난 시원하게 남편에게 지랄한번 못해봤다

그래봤자 나아지는 것도 없기에 일찌감치 

분노해도 소용없음을 알고 맞춰가며 20년넘게 살고 있다


오늘처럼 입으로 막말을 한 적도 없다

남편은 나의 심한 말에 확실히 내상을 입었다.

방에 들어가서 나오질 못한다. 


바람부려 , 돈도 못 벌어, 병들어 있고 

쉰초반에 이도 다 빠쪄서 임플란트를 16개나 하느라 2천5백이나 쓰는 인간을

아직도 끼고 사는 건 

나의 이런 못 버리는 성향 덕분임을 저 인간은 모르는 거다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내가 널 버리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차라리 강아지를 길렀다면 이렇게 나 하는 일에 투덜거리지도 않았을거다

먹을 것만 잘 주면 항상 꼬리치며 나를 칭찬했겠지

온몸으로 나를 기다리고 반가워했을거다 


쓰레기통을 줏어다가 씻어서 사용해도 꼬리치고 나를 좋아해줬을거다

밥상을 줏어와서 닦아놓고 친구들 불러 삼겹살을 구어 먹을 때 펼치고 사용한다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줬을거다.


내가 너를 있는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데 20년이 걸렸다

'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내게 투덜댈 수 있다고 감히 착각하고 있다

내가 말로 비수를 날려서, 네 가슴에 꽂으면 네 상처가 너무 크다

나도 마음이 안 편하고... 착잡하다


그러니 남편아 항상 예의를 지켜라

내 결혼생활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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