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마음이 들켜서 쪽팔려서

네 기쁨이 나의 우울함일 수 있다

by 빽언니

Y엄마는 나 보다 한 살이 많지만 난 그녀를 한 번도 언니라고 부른 적이 없다. 집안에 언니가 없어서 일까 난 누구를 언니라고 부르는 게 쉽지 않았다. 직위도 좋고 남들이 어떻게 부르는지에 따라 누구누구 엄마, 집사님, 사모님 다 불러줄 수 있지만, 내게 언니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인간관계 시작부터 언니 말고 다른 호칭이 불가능한 경우나 내가 진짜 내 언니면 좋겠다고 여겨지게 좋아하거나, 배울 점이 많은 언니라고 여겨지면 언니라고 부른다. 물론 연장자여야 하고 여러모로 언니 같으면 언니라고 부른다.

Y엄마, 그런 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라구요? 세입자지만 2년 이상 만나고 지내서 이제 친구처럼 됐고, 만나면 대화도 많이 하는 내 친구를 욕하는 건 무례한 거죠.”


그녀는 화가 났다고 했다. 자기가 나 보다 나이도 한 살 더 많은 데, 내가 이렇게 가르치려는 듯이 말했기 때문에 화가 났다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 말하는 투가 이런 식이면 안 되는 거 아니냐며 여태까지 하지도 않던 나이 들먹이더니, 자기네 세입자를 훌륭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가르치려 들었다는 게 너무 기분이 나빴다는 거다. 나의 말이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단 말인가? 나이도 어린 게....


Y엄마와 나는, 우리의 아들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인연으로 알게 된 사이다. 가까운 거리에 살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만나던 지인이다. 점심때만 되면 차가 있는 나더러 오라고 해서 허구한 날 밥을 같이 먹자던 YK엄마 덕분에 난 혼자 점심을 먹는 시간이 줄었다.


몇 년 동안 그렇게 잘 지냈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자기랑 친구가 된 전세 세입자를 훌륭하지 않다고 말했다는 게 화가 났다더니, 그런 건 훌륭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고 가르치려 들었다고 화를 내기도 하고 헷갈린다.


최근에 Y엄마는 9억짜리 강남 아파트를 전세가 7억 할 때, 자기돈 2억만 들고 갭 투자를 했는데 3년 정도 지나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막 오르더니 지금은 15억이 되어 있다고 엄청 신이 나 있었다. 그런 얘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질투하고 그래서 신나도 티도 못 내지만, 나는 집이 있는 사람이라 자기가 그런 얘기해도 질투 안 해서 말하기 편하다고 했다. 내가 몇 십억 짜리 집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미뇨씨도 그때 샀으면 좋았을 텐데....” 자랑 끝에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녀가 강남에 집을 살 때는 일 있어서 한국에 간다고만 했지 부동산 사러 간다는 얘기는 귀띔도 해 주지 않았다. 한두 푼 하는 쇼핑도 아닌데 충동구매를 했단 말인가?


사고 나서 몇 년 후 오르니까 슬슬 자랑을 시작했는데, 설사 그런 얘기를 지금처럼 오르기 전에 내가 들었다고 한 들 내 수중에 몇 억씩 들고 바로 강남에 갭 투자를 할 상황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던 거라 난 그러려니 하고 그녀의 자랑을 들어주고 축하해 주는 편이었다.


그녀는 강남 대치동에 아파트를 샀고, 항상 강남 예찬론자였다. 난 강남에 아파트는 없는 사람이지만 중국에 사놓은 집도 있고 , 한국에도 집이 있으니 자기와는 수준이 통한다고 생각되었는지 그녀의 강남 예찬과 강남의 성공적인 갭 투자 스토리를 항상 들어줘도 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 노인네 혼자 몸뚱이인데, 아들 편하게 집 팔게 두고, 노인네는 그냥 작은 빌라로 이사 가면 좋겠는데 고집을 부리고 그 집을 못 팔게 하고 깔고 앉아있대요. 글쎄” 세입자가 시어머니에 대해 한 말이라며 Y엄마는 나에게 해줬다.


“ 그 80세넘은 할머니가 자기돈 들여서 산 집이니까 그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거 아닐까요?”


“ 아니래요. 아들이 산 거래요”


“ 80세 넘으셨다면 내일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 그대로 두지. 노인네더러 어디로 이사 가라고 그러는 거예요? 아들 며느리네 가족이랑 같이 살지도 않는다면서...”


“ 그 집 남편이 65세 정도 되면, 막내도 대학 가니까 그때쯤 되면 다 놓고 죽고 싶다고 말했대요. 지쳤다고”


“ 세입자 남편이요? 누군지 모르지만 그 아저씨도 외벌이라 힘든가 보네요. 돈 쓸 때는 많은데 자기 엄마가 집 못 팔게 해서 힘들다는 건가요?”


“ 네, 노인네가 강남에서 오래 살아서, 다른 곳에서는 못 살겠다고 그러는 거래요”


이 대화는 강남이 얼마나 좋으면 80세 노인이 아들며느리를 힘들게 하면서도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을 하려고 시작한 Y엄마의 신념에서 시작되었다.


“ 며느리 입장에서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거 아닐까요? 80세 노인네가 강남 좋아서 아들 힘들게 하면서까지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닐 것 같아요. 설마 아들이 지 엄마 때문에 다 놓고 죽고 싶다고 했을까?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지친 거겠죠. 일하지 않는 전업주부 아내와 늦둥이 자식까지 있다면서요?

“ 예전에는 시어머니를 같이 모시고 살았었대요. 그런데 늦둥이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분가를 한 거래요. 밤에 안 자고 공부할 때면 할머니가 새벽에 화장실 가다가라도 들러서 몸 상한다고 잘 때는 자라고 잔소리해서 애가 싫어했대요.”

“ 할머니 입장에서는 손자가 걱정되니까 한두 번 그랬겠죠. 강남 애들 공부 장난 아니게 많이 한다면서요. ㅎㅎ”

“ 그래서 어떻게 그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느냐고.. 참 훌륭하다고 말해줬어요. 요즘 그런 여자들 별로 없는데 ”


“ 시어머니를 모신 건지, 경제적인 이유로 같이 살았던 건지 아들 가족이 들러붙어 살았던 건지 그건 모르는 거죠 ㅋㅋ ”


“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훌륭한 것 같아요 ”


YK엄마의 강남 아파트에 전세를 사는 여자네에 관한 얘기였다. 난 아예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벌써 몇 번인지 하던 얘기였지만 우리는 자주 만나다 보니 할 말이 더 많이 생겨서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흐드러지게 했다. YK엄마의 세입자 여자가 며느리로서 훌륭하거나 말거나, 그녀의 남편이 삶에 지쳐서 65세까지만 살고 싶다고 말하거나 말거나 내가 모르는 사람들 일이고, 또 애기만 듣고 내막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얘기를 전화기 붙들고 수다 떨기도 우스운 건데, 그렇게 보낼 시간도 많아서 그녀도 나도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기가 가능했다.


“노인에게 강남이 뭐가 그리 좋을까요? 그냥 아들이 길 건너 아파트에 사니까 멀리 안 가려는 거겠죠”


“ 강남 좋죠. 병원도 가깝고 ”


“ 강남 아닌 곳에 병원이 더 많죠. 할머니가 학원 다닐 것도 아니고 물가 저렴한 재래시장도 없는데... 근데 그 아들이란 아저씨는 돈을 엄청 잘 버나 봐요?”


“ 할머니가 계신 집이 20평대 후반인데 자기네 집이지만 좁았던 거죠. 애들도 크고 해서 큰집으로 가야겠는데, 역삼중학교에 배정받느라고 그 동네 못 떠나니까, 할머니는 그곳에 살게 하고 그 집 대출받아서 우리 집에 전세 들어온 것 같아요”


그랬던 거다. 80대 노인이 사는 아파트는 대출을 잔뜩 뽑아서 전세도 줄 수 없으니 깡통주택에 노인이 혼자 계시게 하고 지들은 같이 살기 싫으니까 그 돈 빼다가 길 건너 아파트에서 따로 전세를 사는 거였다. 자기들 집이라고 해도 대출이 많으니 전세를 줄 수 없고, 할머니랑 합치기는 싫었던 거다. 훌륭하긴 개뿔.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어머니만 없었다면 그 집을 팔거나 자기들이 들어가서 살 수도 있었던 건데, 80세인 시어머니가 정정하게 살아계신 것도 걸리적거린다는 뜻일까? 난 내 얘기도 아닌데 심술이 났다. 80세의 노인이 하루 세끼를 혼자서 밥 먹는 장면이 떠올랐다. 쓸쓸할 것 같았다. 쉰 갓 넘은 나도 아들도 신랑도 없을 때 혼자 밥 먹으면 밥맛도 없어서 좋아하지도 않는 라면을 끓인다. 그 할머니는 강남에 사는 맛에 그렇게 혼자 산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억지다. 외롭게 혼자 살거나 팍삭 늙어서 밥맛 없어 봐야 그 심정을 아나?


“남편 힘든 거 걱정되면, 너무 늙은 시엄마더러 뭐라 할 게 아니라, 지들이 조금 저렴한 빌라로 전세를 가면 되지 않을까요? “


“ 그건 안 되지 미뇨씨”


“ 왜 안 돼요? 입학 전에 아파트 살았던 애가 입학한 후에 빌라 산다고 퇴학당하는 것도 아닌데... 지들은 아파트에 사는 게 당연하고 시어머니는 빌라에 살아야 한다는 걸로 들려요”


“ 그래도 아파트가 편하죠”


“ 늙을수록 아파트가 편해요. 빌라는 1층 아니면 다 걸어 올라가야 하거든요.”


“ 예전에는 모신 적도 있대요. 그거 하나만 봐도 훌륭한 사람 같아요."


“ 뭐가자꾸 훌륭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나이가 많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아니고 홀로 두고 있고, 남편이 죽고 싶다고 하는 게 강남 좋아서 아파트 혼자 깔고 앉아 있는 시어머니 똥고집 때문이라고 말한다는 며느리가? 그런 건 훌륭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이기적이고 지 입장만 생각하는 며느리죠”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런 의견이 듣기 싫었다. 훌륭한 년들 다 죽어서 세상에 그 여자 혼자 남았다고 해도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가 훌륭하다는 건지? 아무 근거 없이 부모와 한 지붕에서 살면 훌륭하고 따로 살면 안 훌륭한 건 아니지 않은가?


오전부터 걸려온 전화를 그렇게 끝내고 난 언제나처럼 오늘도 입술에 땀나도록 떠들었다. 할당량을 달성한 듯, 숙제 하나를 완성한 듯했다. 그런데 저녁식사를 마친 시간쯤에 YK엄마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할 얘기가 또 남았나?


전화가 오면 전화기를 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못 본다. YK엄마의 전화는 이어폰을 끼고 받아야 한다. 전화가 길어지기 때문에 들고 있으면 팔도 아파지고, 시간이 길어질 걸 대비해서 두 손을 프리 상태로 둬야 한다. 다른 일을 하면서 받아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도 일이 없고 외로운 아줌마다 보니 그 전화를 다 응대를 했다.


“ 내가 금호동에 사 둔 건 언제 파는 게 좋을까? 미뇨씨. 어우 너무 고민돼”


“ 금호동은 또 뭐예요?”

“ 내가 금호동에 분양권 샀다고 말 안 했어요? 한 것 같은데 ”


이런 젠장~! 지가 나한테 언제 그런 걸 얘기했다는 건지


“ 아이고 돈도 많으시네, 그건 또 언제 하신 거예요?”

“ 대치동보다 먼저 산 건데. 내가 말 안 했구나 ”


“ 종부세 내고 계시겠어요? 그렇게 여러 개 갖고 있는 사람들 나중에 양도세 많이 나온다고 팔라고 하는 거잖아요 지금”


“ 나 종부세 사백씩 내요, 너무 아까워~”


강남은 역시 다르다고 전세를 2년마다 1억 이상씩은 올려 받을 수 있다고 입 찢어지게 자랑할 때는 하늘로 승천하듯 말하던 Y엄마가 아닌가.


“ 그중에 똘똘한 하나만 남겨야 한다는 거죠?”

“ 그래요. 근데 금호동 더 두면 재미 본다는 데 당장 팔기도 아깝고...”

“ 대치동은 세입자가 있으니까 당장 팔기도 그러시겠어요. 강남이 더 올라주기도 하니까 하나 남기려면 대치동이 아닐까요?”


“ 난 두 개 다 남기고 싶어서 그러지. 내가 아들만 둘이잖아요 호호호”


아들들은 국제학교니 뭐니 돈 처발라서 영어 가르치며 대학까지 보냈는데 나중에 집도 못 살 것 같아서 미리 두 채나 사두고 난리였던 거냐? 나는 순간 기분이 상했다. 아마 맨날 같이 놀면서도 나 모르는 사이에 부자가 되어 있는 그녀에게 질투심이 대폭발 한 거다.


Y엄마의 기쁨과 자부심에 난 진심으로 함께할 수 없었다. 남편의 사업이 예전 같지 않은데 수입은 확 줄고 애는 대학에 입학하는 바람에 나는 얼마 전에 살고 있던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Y엄마도 그걸 안다. 그런데 88세도 떠나기 싫어할 정도로 좋은 강남에 아파트 샀는데 6억이나 올라줬다는 걸 자랑하면 내가 함께 기뻐해 줄 수 있어야 하는 데 위축되어 있는 나는 그게 힘들었다. 게다가 금호동 분양권은 또 뭔가? 상대적으로 확 가난해진 것 같은 내가 그녀의 경제적 신분상승을 함께 즐거워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 자랑 그만하시죠 ㅎㅎ”


“ 난 자랑한 게 아니고 내 상황을 말한 건데, 고민이 되니까 ”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살 때는 숨기던 집들. 이제 와서 팔 때는 나랑 의논하자는 건가? 친구 맞나?


“ 오늘 하루 종일 저랑 3시간은 전화 것 같아요. 자랑하시느라 흐흐”


난 그렇게라도 내 속을 보이면서 그녀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YK엄마, 그런 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라구요? 세입자지만 2년 이상 만나고 지내서 이제 친구처럼 됐고, 만나면 대화도 많이 하는 내 친구를 욕하는 건 무례한 거죠. 그리고 미뇨씨도 OO대학 나왔다고 자랑 많이 했잖아욧! ”

난 깜짝 놀랐다. 내가 더 친하면 친했지 세입자랑 지랑 얼마나 친하다고?... 또 내가 내 출신 대학을 YK엄마에게 자랑했던가? 말하다 보니, 시아버지, 시누이, 남편, 시아버지의 형수님 그리고 나까지 같은 대학 출신이라 얘기거리가 되니까 내가 언급을 한 적은 있지만 자랑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가 이화여대 법대 1학년 다니다가 중퇴했기 때문에 최종학력은 고졸이라고 말했을 때는 “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할 뻔했네요 ㅋ” 라며 맞장구를 쳐 준 적이 있다. 그런데도 내가 대학교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자기 입장에서는 자랑 같았다는 거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화도 없고 왕래도 하지 않는다. 참 사소한 일이었는데 서로를 부러워하다가 둘 다 진 거다. 우리가 다시 만나도 마지막 그 날의 모습은 그대로다.

강남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세입자 가족의 88세 시어머니가 '강남 강남'하면서 안 떠나려 할 정도라고 강조하기 위해서 꺼낸 얘기가 시작이었는데, 내가 그 부분을 인정 하지 않으니까 갑자기 한 살 많은 자신의 나이를 들먹이며 나더러 무례하다는 둥 덤터기를 씌우는 거다.계속 강남 예찬하는 자신의 모습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


Y엄마는 지금쯤 금호동을 팔아서 더 큰돈을 만졌을 테고 난 집을 팔고 또 샀지만 총자산은 줄어든 상태로 그녀를 따라가기 더 힘들어졌고, 확인하기도 어려운 이대 중퇴 드립을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졸이고, 서울의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나름 좋은 대학을 다닌 나처럼 대졸자가 될 수는 없는 거다. 우린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서로 기분 상해서 더 이상 같이 놀지 않는 사이가 되었을 뿐이다.


몇 년 동안 그림자 같은 항상 만났던 사람인데, 고마웠던 일들도 많았던 관계인데, 말 한 두 마디로 서로 속을 보이고 나서는 서로의 마음이 들켜서 쪽팔려서 우리는 만나자고 밥 먹자고 말할 용기조차 못 내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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