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두 개씩 싸 들고 아침 7시까지 등교해서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명분의 강제학습을 했다. 10시에 교문을 나서면 독서실 봉고차가 교문 앞에 즐비하게 늘어서서 학생들을 데리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봉고차를 타고 사설 독서실에 가서 , 10시부터 12시, 1시까지 또 입시공부를 해야 했다.
모두 그렇게 했었다.
고3 학생들도, 그들의 부모들도, 학교 선생님도, 교문 수위 아저씨도...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텐데... 그 누구도 그 쳇바퀴를 빠져나올 수도 없었고, 한탄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진지하게 그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모두가 합심해서 거대한 쳇바퀴를 돌렸다.
내가 좀 지쳐서 다리에 힘이 빠졌을 때도, 옆 사람이 계속 돌리니까 쳇바퀴는 어쨌든 돌아갔다.
난 능력이 부족해서 허공에서 다리만 허우적거렸을 뿐이었다.
틀 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아무 성과도 없이 질질 끌려다니다 보니 어느덧 졸업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뭘 한 것도 없으니 겨우 쪼금 나온 성적으로 두근두근 쫄면서 원서 넣었었다.
운이 좋았는지 , 성적에 맞는 곳보다 하향 지원해서인지 그나마 4년제 대학에 일착으로 합격은 했다.
그냥 엄청 느리게, 힘들게 기어서 흙투성이가 된 채로 큰 산을 겨우 넘은 것 같았다.
당시에 해방감은 엄청났다. 세상 편하게 잠을 잤다.
겨우 대학 들어가는 일에
그 수많은 시간을 마음 졸이고, 쪼그라들고 좁아진 마음은
불행한 기분을 낳고, 답답한 심정에 항상 휩싸여서 편협한 생각을 했던 거다.
고 3 때 날 견디게 한 건 나의 딴짓들 덕분이다
난 뭐라도 했었다.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고 뻔하니, 공부는 대충하고 딴짓을 섞어서 스스로에게 숨통을 열어줬다. 시간을 내서 딴짓을 하러 다녔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서 심야영화를 엄청 보러 다녔다.
반장을 비롯한 여러 애들이 나를 교실 한 쪽벽에 몰아세우고, 야간 자율학습 어기고 땡땡이쳤다고 응징을 하려 했지만, 난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왜 지랄들이야? 배 아프냐? 부러우면 니들도 극장 가면 되잖아~!
또, 고3인데도 뜬금없이 주 1회는 한글서예를 배우러 다녔다. 말죽거리에서 굳이 안국동까지 가서 한국일보 문화센터에 등록까지 하고 다녔다. 나 혼자 고삐리였고 모두 아줌마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거긴 어떻게 찾아가게 된 건지 참.. 기억도 희미하다.
그게 뭐라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한참 동안 다녔던 것 같다.
다른 애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숨구멍이었을까?
남들은 하지 않는 주술행위처럼 나만 몰래 하는 특별한 의식 같았다
목표의식이 있거나 목적이 있는 행동들도 아니었다. 그저 숨통을 틔게 하는 잠깐의 일탈들이었다. 그렇게라도 안 했다면 단조로운 일상, 납득이 안 가는 입시지옥에서 죽도록 힘들어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입시지옥의 고통은 공부를 못하는 애들도, 공부를 잘하는 애들도 다 느끼는 거다. 그 고통의 깊이나 고통의 정도 또한 성적순이 아니다.
난 아주 오래전 팔십 년대 후반에 어쩌다 살아남아서, 여태까지 쉰을 넘기고도 살고 있다. 치열하게 공부해서 최선두에 서 본 적은 없었지만, 인생에는 꼴등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과 기회도 널렸다.
그때 안 죽고 더 살아보니 좋은 일이 많았다.
안 죽고 살아남기를 잘했다 싶을 정도로 멋진 경험들도 했다. 수학은 못했지만 문과적인 기질은 있어서, 세계적인 유명 대학에 유학 가서 인문학 석사학위도 받았다. 땅만 쳐다보고 다니던 내가 이젠 자존감 뿜 뿜 됐다.
그냥 꾸역꾸역 견디는 일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가 고3 때겠지만, 죽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