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않아 주셔서 감사하다

길러 주셔서 감사하다

by 빽언니

나는 한 번도 부모님이 날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난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내 인생의 출발은 내가 원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선택할 수도 없었고, 거부할 수도 없이 태어나 세상에 던져지고 보니 나의 부모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떤 자식에게도 탄생의 자유는 없다. 자식을 낳은 사람들이 만들어서 낳아 놓고 보는 거다.


나도 내 아이를 내 마음대로 낳았다. 문제는 낳은 후다. 어떤 이들은 낳아 놓고도 못 길러서 버리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낳지도 않았으면서 인연을 맺고 마음을 다해 기르기도 한다.


어느 정도 철이 들자 난 내 부모님에게 길러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은 하게 되었다. 내 부모님은 무척 가난했고, 가방끈 짧은 분들이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식을 책임지고 잘 기르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내 새끼들 고아원에 안 보내려고 안 해 본 장사가 없지


엄마의 말속에서도 알 수 있지만,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가 버젓한 직업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일정하게 돈을 벌어 오던 어른들이 아니었던 것도 기억한다. 수박이 팔릴 것 같으면 수박을 팔고, 보따리 장사가 잘 된다고 하면 그걸 배워서 하기도 했다. 벌이가 좋을 때는 꽤 벌었지만, 장사도 뭐도 안 되면 몇 달 동안 수입 없이 공치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항상 돈이 부족했고 미래가 불분명했었다. 난 월 450원이면 되는 고등학교 육성회비를 못 내서 교무실 앞에서 자주 두 손을 들고 앉아있어야 했다. 쪽 팔릴 정도로 궁핍한 시절도 있었고, 엄마와 아빠가 돈 벌러 간다고 떠나며 나와 동생을 외가나 친가에 몇 달씩 신세 지게도 했지만, 그래서 눈칫밥은 잔뜩 먹고 자랐지만 내 부모는 자식을 모르는 곳에 내다 버린 적은 없다.


아빠는 형제는 있었으나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고아나 마찬가지였고, 중학교도 못 나온 엄마는 나의 외조부모 역시 무지하고 가난했기에 옆에서 영리하게 인생의 멘토가 되어 준 어른들도 없이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부모는 치열하게 자식을 길렀다. 뭐 하나 풍족하게 가진 것 없이 자란 내 부모는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묻지도 않고 낳아서 세상에 내놓은 나를, 내 동생을 잘 길러보겠다고 노력하고 고생했던 수많은 시간을 난 이제야 겨우 이해한다.


쉰이 넘어서야 안다. 초로의 나이가 되어서야 내 부모가 자식을 길렀다는 것이 남들보다 더 수고스럽고 고생스러웠을 거라는 걸 절실히 알게 된다. 남들도 다 자식은 낳을 수 있고, 여건이 좋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으면 아이를 엄청 잘 기르기도 한다. 그러나 내 부모처럼 학벌도 집안도 돈도 없이 초라하게 출발한 젊은 부모가 세상의 풍파를 넘으며, 온몸으로 일하며, 막노동을 하며 자식을 길러줬다는 건 말도 못 할 정도로 크게 감사한 일이다.


물론 난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이 사회에 크게 도움이 되는 사람도 아니고, 돈이 엄청 많은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난 건강하고, 엄마의 노고를 알고 내 아이를 사랑하고 이웃을 격려하는 비교적 괜찮은 아줌마가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바라는 게 전혀 없다고 하셨다. 건강하게 스트레스받지 말고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웃으면서 살면 된다고 하셨다. 내 엄마의 평생소원이 바로 내가 밥 잘 먹고 즐똥 하면서 사는 거라니 효도하기 정말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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