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자부심이 있었다.
'내가 서방복도 없고, 먹고 살기는 지랄같았어도 니들을 고아원에는 안 맡겼다'
엄마가 이렇게 자부심을 느끼는 일인 줄은 알지만, 우린 고아원만 안 갔을 뿐 친척집이란 친척집은 다 돌면서 살았다. 아빠랑 싸우던 엄마가 집은 나가버리면 아빠는 우리를 그 때마다 친척집에 데려다 두었다. 우리를 반가워하는 친척은 없었지만, 혀를 차면서 눈도 안 마주치면서도 불쌍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잠시 끼어살게는 해 주었다. 눈치밥이라는 걸 먹으면서, 주는 대로 먹고 살아야 하는 남의집 살이는 밥을 굶기는 것도 아니었는데 항상 뭔가 덜 먹은 듯이 배가 고팠다.
넉넉치 않은 작은아버지댁은 이미 4남매가 있었다. 밤에는 우리 남매까지 8명이 방하나 마루하나인 집에서 퍼즐처럼 엉기고성겨서 잠을 자야했다. 사촌동생의 냄새나는 발이 내 코밑에 오는 것도, 내 발이 작은엄마의 발과 닿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자면서도 즐겁다고 깔깔대며 지붕이랑 벽이 있는 곳이라 고마워하며 얹혀 살았다.
우이동 계곡에서 유원지를 하던 작은 고모댁은 여름철 성수기에는 바쁘게 여러 어른들이 먹고자면서 일했기 때문에 먹을 것이 꽤 많이 남아돌았다. 손님들이 먹다 남은 닭백숙도 얻어먹고, 팔다 남은 안주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뒷방에서 고모부가 혼자 고기를 구울 때는 우리가 쳐다봐도 와서 먹으라는 말도 없었다. 바람부리다가 얼마전에 집구석에 돌아온 남편에게 자주 고기를 구워 먹게 해 주는 고모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갔지만, 아마 고기를 자꾸 먹게 하면서 잘해주면 고모부가 두번 다시 다른 여자를 만나러 못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모의 애원이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