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고프면 또 사지 뭐

오래 끼고만 있으면 안되겠지?

by 빽언니

영어권 대학을 겨냥해서 공부했던 것도 아닌데, 중국에 사는 동안 미국계 국제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SAT나 AP를 공부해야 했던 아들의 책이 꽤 많았다. 비싼 수험서였지만 시험을 다 끝내고, 대학에 합격한 후에는 친한 후배에게 합격의 기운을 함께 받으라고 잔뜩 넘겨주었다. 내가 도전해 볼만한 만만한 영어소설책만 몇 권 빼고는 다 줘 버렸다. 막상 조금이나마 중고 값을 받고 넘기려고 했는 데 가격도 애매했다. 살 때는 돈을 잔뜩 주고 샀기 때문에 시험이 끝난 후라고 해도 사실 막상 주기에도 아까웠지만 마냥 끼고 있다고 해도 달리 읽을 사람도 없었다.

책은 몇 권만 돼도 돌덩이 같이 무거워서 가져다주기도 힘들고 가지러 오라기도 무거운 물건이라 차가 있는 내가 친절하게 실어다 주었다. 선물이 되어 버렸으니 파는 것보다 생색내기에도 좋고 뿌듯했다.

이제는 볼 사람도 없는 책을 아깝다고 계속 끼고 있는 건 더 곤욕이다. 시간이 지나면 벌레도 생기고, 덩치도 큰 것들이 책꽂이 한쪽에서 떡하니 자리도 차지하는 지라 한 동안 쳐다만 보다가 천천히 새로운 임자들을 찾아갈 수 있게 보내주었다.

대입 수험생이 있던 집답게 토플책은 여전히 단계별로 종류대로 있고, 일본어 JLPT수험서와 중국어 HSK수험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들이 읽던 중국어 동화책과 영어동화책, 소설책이 많다. 한 바탕 책 정리를 하면서 다른 건 다 버려도 못 버린 원서 소설들은 내가 아직 읽지도 못했던 것들이라 차마 버리지 못하고 끼고 있는 것이다. 영어로 된 책을 평소에 보지도 않으면서 괜히 미련이 남아서 그런다.

조금 시간이 여유로워지면 읽어야지 했는데... 벌써 노안이 오고 있으니 도대체 언제쯤 저 책들을 읽게 될지 더 기약이 없다. 시간이 나면 눈이 안 보여서 읽지도 못하게 될 것 같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블로그나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읽고 소통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이제는 이런 상황에도 익숙해졌다. 책 없어도 책 비슷한 읽을거리들이 난무한다. 인터넷으로 신간의 E북을 볼 수도 있고, 웹툰으로 드라마 원작을 볼 수도 있어서 지금 우리 집 책꽂이에 있는 몇 권의 책들은 아마 슬그머니 줄어들었다가 언제쯤인가에는 싹 다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슬그머니 책이 고프면 아쉬워서 또 책을 사서 읽게 되고 책꽂이에 채워둘지도 모른다. 슬그머니 없어졌다가 다시 생겼다가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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