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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유 일기

가끔은 전력 질주해라

근데 난 언제쯤 이 참견병을 고칠라나?

by 빽언니


회사일, 아들일, 남편의 병환,

앞으로 어떻게 해야 더 좋아질까를 매일 생각하며,

난 사방에 신경을 쓰며 살고 있다.


뭐하나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일 같아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정해야 할지 몰라서 뒤죽박죽.

안절부절못할 때도 있다.


책의 활자가 눈에는 보이는데 읽어지지가 않는다.


시간에 따라 짜 놓은 계획표대로 움직여야 할까?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까지는 뭔가를 읽고 쓰고

나만 재택근무니까 현지 직원들과 연락을 취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저녁 준비도 해야 하고

늦어도 저녁 8시까지는 운동을 다녀오고 12시에는 자야 한다.

이 정도로 해 뒀는데 이 계획 중에

뭐 하나 틀어지면 그다음이 또 틀어진다.

그렇게 되면 하나만 건너뛰면 되는 데

왜 이리 효율도 떨어지고 컨트롤이 안되고 끌려다니는 건지

전체적으로 루틴이 어수선해진다


오늘은 책이 특히 눈에 안 들어와서

길을 지나가다가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라테를 한 잔 시켜놓고

한 시간 타이머를 설정해놓고 책을 폈다.


졸음이 몰려왔다

아들이 등록하러 가는 토익학원에 같이 좀 다녀왔더니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졸렸다.

나만의 시간이 줄어서 조용히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커피는 커피대로 다 마셨는데도 졸리고

허리도 목도 아팠다


아들은 아들대로 한마디 했다

스무 살 넘은 아들이 학원에 등록하러 가는 데 꼭 엄마가 같이 가야 하냐고....


내 생각에는 지난달에 시험을 치른 아들의 토익점수가 너무 낮게 나왔다

만점을 받을 정도로 실력은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845점이라니...

이 시험도 내가 한번 보라고 해서 강제로 본 거다.

유형과 포맷이 정해져 있는 시험인데도

그 시험의 기출문제도 안 풀어보고 시험을 보는 녀석의 성의 없음에

난 분노했고, 시험을 푸는 스킬도 딸리는 것 같아서 내가 다시 참견을 하게 된 거다. 토익시험이 뭔지 공부를 안 해 봐서 그런 것 같다.


아들이 학원에 안 간다는 걸 또 강제로 끌고 간 거였다.


"넌 이제 대학교 3학년이니까 준비를 해야 한다. 남들처럼... 내가 학원비 내주고 교재도 사 줄 테니 만점을 목표로 다시 해 봐라'가 내 주문이었다.


학원에서는 이 점수를 딴 애가 왜 왔나(그것도 엄마랑ㅋㅋ) 싶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내 생각에는 아들이 토익이라는 시험의 유형을 좀 더 많이 접하면 만점인 990점에 가까이도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욕심이 들었던 거다. 일단 기출문제만 더 한 달 내내 풀어보는 반에 등록을 하게 했다.


녀석은 전적이 있다.

도서관에 간다고 하고는 PC방에서 죽 때리다가 나한테 걸린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럴 수 있기는 하지만, 너무 빈번했고, 너무 놀아서 대학 학점이 겨우 2.8 정도다.


주도적으로 공부를 하고자 작정을 했다면, 토익 정도는 집중해서 독학만 한 두 달 해도 점수가 확 올라갈 수 있는 케이스라고 생각하는 데 그걸 안 하는 녀석이 답답했다. 영어를 좀 하는 녀석이라 실력을 공인 영어성적으로 표현해둬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안이하게 놀고만 있는 모습이 아까웠다.


전력질주를 안 해 보면, 전력질주를 해야 할 때 전력질주가 안되더라고...
가끔은 전력질주를 해 봐야 한다.


난 아들에게 동기부여를 한답시고, 강한 조언을 할 때 이렇게 말해준다

뭘 한 번 하려면 숨이 헉헉 차게 제대로 한 번은 해 봐야 한다고 말이다.

슬렁슬렁하는 게 습관이 되면, 본인을 합리화시키며 어리광 부리면서 살게 된다고..


머리가 삐죽삐죽 자랐는데도, 노숙자같이 산발이어도 손질을 안 하는 녀석의

자유분방함에 또 분노하고, 학원을 등록하고는 헤어숍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


지가 다 알아서 한다고 반항은 자주 하지만

게을러서 그런지 내가 보기에는 알아서 하는 게 없다.

녀석이 알아서 하게 손을 떼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20대 초반이라 그런지 난 내가 못 참고 꽤나 참견한다.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으면 (내 생각이지만 ㅎㅎ)

톡톡 쳐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거라고 내 나름대로 애쓰는 거다.


내가 어릴 때, 내 부모는 나의 하루 세끼조차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했다.

육성회비 450원을 못내 줬다. 육성회비 안 낸 학생은 전교에서 나 혼자뿐이라

고3 때도 교무실 앞에서 손들고 서 있었던 나는 무척이나 쪽팔렸었다.


부모가 나를 돌봐주면 좋았을 시기에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다.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가야 하는지를 같이 생각해 주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부모들이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선택하고 결정해야 했다.

대학에 붙었어도 등록금을 해 줄 수도 없었지만,

엄마는 결국 빚을 내서 내 입학을 어렵게 도와줬다.

헝그리 정신으로 똘똘 뭉친 나는 4년 내내 성적장학생으로 기를 쓰고 학교를 다녔다.


내 아들은 환경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헝그리 하지도 않다.

녀석이 스무 살이 넘었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어른이지만

막 어른이 된 이 연령대는 아직도 완전한 어른이 아니다.

부모가 뭔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다면, 해줘야 한다고 본다.


난 아들이 자신의 직업을 얻고, 배우자를 얻고,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인정할 것 같다.


그전까지는 학생 신분으로 용돈이나 벌지 제대로 돈도 못 벌고,

물론 아직 취업도 하지 않은 상태로 있으니까 좀 더 참견을 해 볼 생각이다.


다른 집 아들은 다 지 할 일 잘하고 , 생각 있어 보이고 깔끔한 외모로

예쁘게 멋도 내고 다니는 데.... 내 아들은 왜 이리 부족한지...

후줄근하고 꿰제제한 게 참 못났다.

마음이 안 놓인다.


이렇게 내가 매 순간 여러 가지 사소한 일까지 다 참견하고 다니니

책 한 구절 눈에 안 들어오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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