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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언니 Apr 28. 2019

시엄마의 시어머니

사랑받은 기억으로 산다

시집을 잘 갔다는 얘기를 듣는 사촌 여동생이 있다.

여자 형제만 있는 외아들과 결혼을 했는데 남편도 잘해주고, 시누이들도 깍듯하고 무엇보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엄청 잘해 준다는 것이다.


내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사촌동생의 결혼과 출산의 시기에 딱딱 맞춰서 축하를 못해줬기도 해서 오래간만에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집안이 넉넉지 않아서 안 해 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고학을 하면서 대학을 다닌 동생은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만큼 부지런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친인척들 간의 소문대로 결혼을 한 동생은 아이를 둘이나 낳고 사랑받으며 잘 지내고 있었다.


가장 부러운 건 시어머니의 태도였다. 15년째 직장생활을 하는 며느리와 아들을 위해 매번 김치도 반찬도 다 담가 준다는 것도 대단했다. 그런데 며느리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도 예쁘다더니 시어머니의 사랑도 같은 식이었다. 김치를 담가도 근처에 사시는 친청어머니와 일하느라 바쁘다는 친정언니 김치까지 담가 준다는 거다. 다른 시어머니도 김치를 주거나 반찬을 줄 수 있지만 친정식구들까지 챙기기는 쉽지 않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며느리에게 말 한마디를 해도 항상 격려하고 칭찬을 한다는 점이다. 정말 항상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결혼 후 10년 정도 되었는데도 여전히 처음처럼 잘해 주는 시어머니라고 한다. 보통 며느리와 잘 지내자고 결심했던 시어머니들도 아들 며느리 결혼초에 1~2년은 유하게 잘 지낸다. 나쁜 시어머니라는 소리 안 들으려고 며느리 생일에 전화하고 며느리더러 전화하라고 하지도 않고 먼저 전화한다는 둥 하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면 태도를 바꾸는 걸 많이 봤다. 자기는 최선을 다했지만 며느리가 원래 싹수가 없어서 도저히 잘해 줄 수가 없다는 둥 태도를 바꾸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고생을 하더니 말년에 복 받는구나. 결혼 잘했다."

그녀의 행복한 결혼과 일상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듣고 나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누구보다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부잣집 딸이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생한다고, 아기 같은 애가 시집와서 일 년에 몇 번이나 있는 제사를 신경 쓰는 게 안쓰럽다고, 시어머니의 시어머니는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음식 장만을 미리 다 해 놓았다고 한다. 시집살이를 한다고 느낀 적이 없을 정도로 친정엄마보다 더 어렵게 대하면서 잘해 줬다고 한다.


그 시어머니는 아직 생전에 계시고, 연로하셔서 97세로 누워계시는 데도 젊을 시절 감사했던 나날을 잊을 수가 없어서 아직도 병 수발하면서 모신다고 했다. 당시는 시집 온 남의 집 딸에게 잘하고 살던 시대가 아니었을 텐데 그녀들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던 거다. 이젠 순서대로 하늘나라로 가는 노인들이 되어서도 며느리들은 여전히 서로를 받들면서 잘 살고 있다. 내 사촌동생도 그 집 며느리로서 제사도 당연히 지내고 있다. 다가 올 미래에 만약이지만 혹시 시어머니가 몸을 못 가누시면 그때는 같은 공간에서 모시며 수발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존중받았던 기억은 존중하는 행동을 낳는 법이다. 대접받은 며느리는 그렇게 다시 자신의 며느리에게 베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할머니의 사랑을 감사하게 여기고 보답하면서 늙어가는 시어머니를 보면서, 또 그 시어머니의 존중을 받으면서 사는 며느리(내 사촌 여동생)는 편안하고 행복한 얼굴로 남편과 자식에게도 잘 대하고 친인척에게도 무척 친절한 중년 여성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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