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를 사랑한 디지털
디지털의 이상형은 아날로그였다
요즘은 광고 CF나 영화를 애초부터 디지털카메라로 찍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광고 일을 하던 20여 년 전만 해도 35미리 필름 카메라로 찍고 나서 디지털 작업을 입혀서 편집처리를 수월하게 하는 절차를 한 단계 더 거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에 디지털카메라의 성능이나 질이 급속도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용과 시간이 이중으로 들어가는 데도, 아날로그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고집하는 감독들이 있었다.
그건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의 따뜻한 질감을 디지털카메라는 표현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손 편지의 정감을 아는 이가 워드프로세서로 친 편지를 보고 느끼는 차가운 무뚝뚝함 같은 것이고, 수타면의 쫀쫀함을 아는 이가 기계로 뽑은 똑같은 굵기의 헐렁한 면발에 실망하며 꾸역꾸역 먹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원래 디지털의 과제는 아날로그 따라잡기였다.
디지털의 이상형은 아날로그였다
사람을 쾌적하게 하는 아날로그의 감성을 디지털은 항상 질투해야 했다. <아날로그 같은 디지털이다>라는 칭찬을 듣는 것이 디지털이 지향하는 최대의 목표였다.
어떤 녀석이 더 마음에 쏙 드느냐라는 문제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었다.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기술들은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것은 몇 차 산업이 되든 간에 여전히 인간을 위한 난리부르스인 것이다.
4차 산업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요즘 매스컴에서 많이 흘러나온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초등학교 때부터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움직임인 듯하다. 엄마들은 더 좋다는 코딩 학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다 프로그래머가 되어야 하는 건가? 하루가 멀다 하고 학원 다니느라 뛰어놀 시간도 부족한 데, 코딩까지 해야 한다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진짜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서라기보다, 남들도 하니까 우리 애도 시켜야 한다고 집단 착각을 해 버린 일들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개나 소나 말이나 닭이나 모두 다 코딩만을 배운다. 개가 도둑을 지키는 능력을 접어두고 , 소가 밭을 갈아엎는 일도 하지 않게 되고, 말이 짐을 더 이상 안 나르고, 닭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꼬끼오하면서 모두 깨워주는 일을 가장 잘했는데 코딩 배우느라 지쳐서 아침에 자빠져 자고 못 일어난다. 모두 다 똑같아져서 쓸모가 없어졌다. 모두가 우르르 똑같은 방향으로 나가버려서 집과 농장을 지키고 가꾸는 일을 하려 남은 이가 없다. 우유를 마시기 위해서 직접 젖소를 기르는 사람은 이젠 없다. 이미 그런 시대는 아니다. 다른 일 하고 그 일로 돈 벌어서 우유를 사 먹으면 된다.
몇 차 산업이든 간에 어차피 사람 하나하나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닌가? 예측도 어렵다는 새 시대가 열린다며 미리 겁먹고 부화뇌동하며 모두 한쪽 방향으로만 기를 쓰며 달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4차 산업시대의 엄청난 업적을 음미하고 즐기거나 참여할 아날로그人들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겠다. 그냥 즐길 거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