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같은 친구
그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했다
그녀가 부럽다.
그녀는 나보다는 4살 정도 어리고, 중년 여성다운 풍채로 약간 뚱뚱하지만
톤이 약간 높은 음성이 아가처럼 맑고 딕션이 정확해서 함께 얘기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무슨 말을 해도 언제나 기분 좋게 대화가 마무리된다.
그녀는 특별히 아부를 떠는 것도 아닌데, 내 근황을 들으면 항상 칭찬을 한다
내가 뭘 했다고 해도, 잘했다고 말해준다.
'언니가 많이 애썼네'
'언니 아들 정말 열심히 했구나. 다 언니가 잘 돌 본 덕이지'
'언니 같은 사람이랑 결혼한 그분이 능력자시네 '
내 가족의 성과를 자랑하면 다 나를 치켜세워준다.
내 가족의 좋은 결과는 모두 내 덕분이라고 말해준다. 난 신이나서 더 떠든다.
20년 넘게 친분을 쌓아오면서도, 듣기 싫은 소리 한 번 안 한다.
타인의 흉을 보지도 않는다.
자리에 없는 공통의 지인에 관한 얘기를 해도 흉을 볼만도 한데 절대 그런 말은 없다.
어떤 부모에게서 자라면 이렇게 반듯하게 나이를 먹는 걸까?
입으로 묻기도 뭐해서 난 오랫동안 관찰을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문득 꺼낸 자기 남동생에 관한 얘기를 듣고 난 어느 정도 그 의문이 풀렸다.
그녀의 남동생은 한국에서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을 나와서, 미국에서 학위도 하고
싱가포르에 있는 유명한 다국적 은행의 지점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호 대단한데.. 그런 동생이 있었어?'
그녀와 남동생과 두 살 터울로 같은 환경에서 자랐으면서도, 태도가 달랐다고 한다.
서울의 미아리에 살았다던 그녀는 사이가 좋은 부모님 슬하에서 사랑받고
전혀 부족함이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자랐다고 했다
그녀는 슬렁슬렁 살았지만, 남동생은 엄청 치열하게 살았다고 한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은 충분히 도와주신 부모님 덕분에
행복하고 편하게 잘 살았다고 느끼는 자기와는 달리 남동생은
우리 집은 왜 더 부자가 아닐까? 내 부모님은 이 정도에서 멈추시는 건가?
불만 아닌 불만과 결핍을 느꼈다고 한다
그건 그녀의 남매가 다 커서 대화를 나눌 때 우연히 알았다고 한다
'언니, 난 충분했는데.. 내 동생은 항상 부족하고 불만이 많았대.. 이상하죠?
저도 동생 얘기 듣고 , 같은 곳에서 같이 자랐는데 어쩜 이렇게 다른 기억으로 자랐을까 싶었어요'
객관적으로 그녀의 가정환경이 어떠했는지 보다는 그녀가 행복했고 생활에 만족했었다는 게 포인트였다.
내가 오랫동안 그녀의 주위 사람으로 지내면서 지켜본 걸로 유추해 보면
무척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은 확실하다.
쉰을 바라보면서도 아직도 아빠 엄마랑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 통화를 자주 하고, 외아들은
그녀의 부모들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외손자라서, 시도 때도 없이 영상통화로 일상 얘기를 주고받는다.
서로 늘 칭찬하고 격려하는 대화를 한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랑을 많으면서 자란 것 같아요"
"안 좋은 기억이나 슬픈 기억이 별로 없어서 화가 나는 일이 없는 걸까?"
천성이 순하고 선량한 걸까?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그녀는 학부모들에게도 천사표 선생님으로 인기가 많다.
예의 바르고 아이들의 진로상담도 자기 일처럼 잘해 주고, 학업 전반에 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녀를 20여 년 알고 지내는 나는 이제 좀 알 것 같다
그녀의 태도나 눈빛이나 말투가 타인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그녀가 여태까지 윗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많이 받았다는 그 사랑이 그대로 뚝뚝 묻어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 때는 착한 그녀를 흉내 내려고 해 봤지만, 난 비슷하게는 되다가도 바로 본성이 튀어나왔다.
그녀처럼 상대방의 좋은 점만 보고 말해보려고 애쓰다가도, 생겨먹기를 남을 간파하거나 분석해서 결론을 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을 지닌지라 속이 금방 분주해졌다. 난 그녀처럼 되지도 못했다. 그래서 가끔 마음이 시끄러울 때는 그녀와 전화를 하거나 만나러 가면 포근한 기운을 받고 온다. 그녀는 나에게는 반창고 같기도 하고 소독약 같기도 하다. 참 좋은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