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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힘 Dec 31. 2022

의사가 꿈인 학생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한다.

학생들의 자퇴가 익숙해진 학교

 올해 초 학생들과 수업하다가 있었던 일이다.


  진로와 관련된 수행평가를 설명하던 중이었다. 예시를 들기 위해 여러 직업들을 나열하던 중,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반에는 의사가 꿈인 학생이 있니?”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니까 한 명 이상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한 질문이었는데,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대답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있었는데요. 자퇴했어요. ”


  나는 그때 받은 충격을 아직도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자퇴한 이유야 바로 예상이 갔다.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 1등급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우리 학교가 대략 220명 정도가 한 학년이니 1등급은 8명이다. 이 8명 안에 들지 못하면 의사가 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내신이 대학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버려서 생긴 문제다. 학생들은 1학년 때에는 전교생 220명과 경쟁하여 9등급제로 평가받는다. 2학년 때부터는 선택과목이 많아 시험 보는 인원이 많아야 100명 남짓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높은 등급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데다 진로선택과목은 ABC 3개의 등급만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대학에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따라서 1학년 공통과목을 수강할 때 최대한 높은 등급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험에서 조금이라도 실수하게 되면 입시에서 매우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시험이 끝나면 항상 하던 말이 지금 성적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어도 앞으로 더 노력하여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대학은 너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만약 내가 다시 지금 1학년 담임을 맡는다면 위의 말은 절대 입 밖으로 내지 못할 것이다. 2, 3학년 때 아무리 열심히 해도 1학년에서 벌어진 점수를 채우기 어렵다. 내신 시험을 한 번 볼 때마다, 자퇴생이 최소 한 명 이상은 발생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학기말 성적처리가 이제 끝나갈 무렵이다. 숫자로 가득한 성적표들 사이에 비어있는 빈칸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이름 옆에 쓰여 있는 자퇴라는 글자를 보며 문득 이 학생들은 어디서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성적 마감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성적표를 확인하며 나는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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