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같은 곳을 다녀야 하나요?
국어 교사 시절에 가장 많이 듣던 질문은 어떻게 하면 국어 성적을 올릴 수 있는가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국어 성적을 올렸어요? 또는 우리 아이가 국어를 너무 어려워하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같은 질문들. 문제는 내가 국어 성적을 올려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국어 성적이 낮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어린 시절에 내 아버지는 집에 책을 잔뜩 사 두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한국 단편 문학 소설집인데, 글이 세로로, 그것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방식의 책들이었다. 1980년 이후부터 가로 쓰기가 보편화되었다고 했으니까 아마 내가 태어나기 전에 구입하신 책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 그 책들에 매력을 느꼈고, 읽지도 못하는 한자를 제멋대로 읽어 가며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보다 이런 어려운 책들을 읽는 나 자신에게 매력을 느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내가 받은 선물은 만년필이었다. 이것도 아버지를 매우 졸라서 산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 당시에 러시아 문학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운 겨울 따뜻한 난로 앞에서 만년필로 소설을 쓰는 러시아 대문호의 모습을 상상했으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를 다니며 나는 당시의 학교에서 가장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빌린 학생이었다. 학교가 시골의 작은 학교라서 보유하고 있던 책이 적었기에 도서관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은 이유는 그게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당시 유행했던 PC통신의 세계에 빠졌었다. 하이텔, 나우누리 같은 PC통신에서 통신문학을 두루 섭렵하고 다녔다. 퇴마록의 이우혁 작가나 드래건 라자의 이영도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글을 두드리던 시절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한 번도 내 국어 성적을 높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재미있는 글들을 쫓아다녔고 그러다 보니 국어 문제를 잘 풀 수 있게 된 것뿐이다. 물론 대학 진학하며 국어교육과에서 공부하다 보니 나보다 더한 괴물들이 득시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순수하게 재미있는 글을 쫓았던 시기가 있었기에 국어 교사의 길을 가게 되었을 것이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
-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 -
어떤 일을 잘하고 싶다면 그 일을 좋아하면 된다. 좋아하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즐기기 마련이다. 즐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길이 보인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일을 더욱 잘할 수 있을지가 보이는 것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이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요즘, 자주 듣는 질문이 언제부터 코딩을 배우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어떻게 하면 코딩을 배울 수 있는지였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특별히 어떤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어떤 책을 사서 공부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외면할 재주가 없어 해결하다 해결하다 보니 결국 이 길에 서 있게 되었다는 말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 보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짠 코드가 내가 목적한 바를 충실히 이행할 때마다 희열을 느꼈고 그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배움을 쫓은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쫓다 보니 배움을 찾게 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결국 코딩을 배우고 싶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즐거움을 느끼면 된다. 프로그램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온갖 버그와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배움은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기 마련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취업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닌, 즐거움을 찾기 위해 배우고 싶은 것이라면 방법은 남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스스로 찾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