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하는 게 차라리 나은 이유
코로나 이후 어느 정도 프로그래밍을 익히고 나자, 프로그래밍 자체가 재미있어졌다. 유튜브를 보며 이것저것 도전해 보다 내 업무에 적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학생들이 성적표를 자동으로 출력해 주는 프로그램이나, 사진 파일을 넣으면 자동으로 사진첩을 생성해 주는 프로그램 등을 제작했고 나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여러 한 문서를 하나로 합쳐주는 프로그램은 연구부에서 교과 계획을 수합하는 일을 할 때 유용했다.
혼자서 쓰기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어, 가까운 선생님들께 파일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저항을 느꼈다. 분명 유용한 프로그램인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쓰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사용자는 중간 과정을 보지 못하고 결과물만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과연 이게 맞는 결과물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분명 검토해 보면 맞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검토하는 시간이 더 걸리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오류에 대한 우려였다.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킬 확률은 사람이 실수할 확률보다 낮지만, 사람들은 자신은 신뢰해도 프로그램은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은 다시 자신이 하나하나 체크하는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을 '굳이' 사용해야 할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잘해왔던 일인데 그걸 새로운 방식으로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업무 시간 단축이나 효율성 제고와 같은 이유도 이미 기존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한두 번 써보고 '와 정말 신기하네요.' 정도의 반응을 보인 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처음엔 나도 신기한 기분에 이것저것 만든 프로그램들을 공유했지만 점차 나도 공유를 포기하게 되었다. 설명하는 것 자체가 조금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필요성에 공감하는 선생님들 몇몇 분들께만 파일을 공유했고,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 혼자 쓰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도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은 혼자 일하기에 그 과정이 없으니 상관없지만 그 당시의 나는 무언가 커다란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이전 학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이전에 만든 한글 문서를 합치는 프로그램이 업무에 참 유용한 것 같아서, 전국 선생님들께 공유하고 싶은데 괜찮겠냐는 이야기였다.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분명히 공유받은 사람들 중의 대부분은 안 쓰겠지만, 그래도 업무에 내 프로그램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개발자의 보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