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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섭 Nov 08. 2018

'DHP 의 투자를 받았다' 라는 의미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사업성 vs. 의학적 의미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스타트업이 반드시 많은 돈을 벌지는 않는다. 이것이 초기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고, 육성하면서 자주 부딪히게 되는 딜레마 중 하나이다.


헬스케어는 상당히 특수한 분야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과 고객이 (기업이든, 건강인이든, 환자이든, 병원이든, 건강보험이든) '충분한' 돈을 낸다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의 창업자나 투자자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특성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상적인 세상에서라면 이 사업성과 의학적 의미 두 가지가 장기적으로는 결국 수렴하겠지만, 현실에는 리소스가 제한적인 스타트업의 경우 그때까지 버티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돈을 잘 벌지만, 의학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회사와

돈은 잘 못 벌지만,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일을 하는 회사.


아마도 대부분의 투자자는 전자의 회사를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전문 엑셀러레이터로서 우리는, 혹은 그 대표이자 헬스케어 전문가를 표방하는 나 개인은 후자의 회사에 더 마음이 쓰인다. 전자의 회사는 우리 DHP가 혹은 내가 아니라도 도와줄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일을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투자자로서 큰 약점이 될 수도 있고, 또 반대로 강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투자자의 관점에서라면 분명히 약점일 것이다. 투자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풀을 줄일 수도 있고, 투자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스타트업을 잘 선발해서, 사업성까지 있도록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면, 혹은 충분한 사업성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미래에 DHP가 투자한 스타트업의 포트폴리오가 중요한 혁신을 이룩한 회사들로 가득 찬 것을 상상해보곤 한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DHP가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스타트업의 요람 같은 곳이 되고 싶다. 그래서 'DHP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 자체로 '거기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스타트업이군' 하는 평가를 받았으면 한다. 비록 아직은 수가 적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투자한 포트폴리오를 보면 그러한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 DHP의 미션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혁신적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이다. 다른 것에 앞서 투자 수익을 잘 올리는 것이 목표인 투자자는 너무도 많다. 하지만 의료 전문가들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모인 우리 DHP는 투자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이 미션이 더 우선이다. 올해가 창업 3년 차이지만 이 원칙을 모든 멤버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DHP는 상당히 특이한 엑셀러레이터이자 투자자이다.


매달 초기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초청하여 무료 자문해드리는 DHP Office Hour. DHP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행사다.

사실 모든 스타트업이 이러한 우리의 미션과 맞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님과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님께서 사업성을 의학적 의미에 더 우선시하는 것도 당연히 정답이다. 다만 우리와 결이 맞지 않을 뿐이다. 결국 스타트업과 엑셀러레이터/투자자 사이에서도 서로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하지만 의학적 의미 외에 사업성만을 따지는 엑셀러레이터/투자자는 우리 말고도 아주 많다. 어쩌면, 우리 외에 모두.. 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요즘처럼 돈이 많이 풀린 시장에서 사업성이 높은 회사는 투자받기가 너무 쉽다. 그런 경우에는 미련 없이 우리는 보내준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일을 하지만 사업성이 낮다면, 지금의 호시기에도 투자받기가 쉽지 않은 것을 많이 본다. 그분들에게는 지금처럼 하늘에서 돈 비가 쏟아지는 시기에도 그 비가 자기만 피해 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스타트업 참 어렵다. 직접 하시는 창업자들이 당연히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그 어려움은 잘 느껴진다.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을 주변에서 더러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는 의학적 의미에 대한 추구와 (살아 남기 위한) 사업성의 두 마리 토끼 중에 단 한 마리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많이 맞닥뜨린다.


대표님이 의학적 혁신의 추구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면. 단기적으로 시장이 작고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분야 중 많은 경우는 시장이 작다) 사업성이 낮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면,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도 투자자로서 DHP만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이다. 


이 부분이 현재 우리의 약점이고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아직은 우리가 펀드도 적고 TIPS 주간사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투자를 받는다고 해서 수개월을 버틸 수 있는 자금적 여유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현재 LP를 모아서 더 규모 있는 펀드를 만들고 내년에는 TIPS 주간사 요건을 갖춰보려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조만간 작지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스타트업 참 어렵다. 그리고 스타트업을 지원하려는 엑셀러레이터도 어렵다. 어찌 보면 우리 DHP도 결국 또 하나의 스타트업이다. 위로는 LP 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을 따와야 하고, 아래로는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하여 우리 투자를 받으시게끔 설득해야 한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스타트업도 그러하지만, 우리 DHP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스타트업에게 제안하는 가치는 상당히 특이하다. 투자자로서, 엑셀러레이터로서 DHP가 한국에서, 더 나아가서 글로벌에서 가지는 포지셔닝 또한 상당히 특이하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불가피할 것이다. 부디 그 과정에서 우리도, 우리가 키우는 스타트업도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장기적으로 사업성과 의학적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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