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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섭 May 06. 2019

헬스케어 스타트업, 변화의 동력이 되려면 (4)

새로운 시대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큰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 부분은 창업가에게 아쉬운 부분이다. 스타트업이 진정으로 변화의 동력이 되려면, 보다 ‘큰 문제’에 도전하는 팀이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큰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그리 많지 않다. 고만고만한 아이디어, 어디서 많이 본듯한 아이디어는 많이 있지만, 시장의 판도를 통째로 바꾸려고 하거나, 의학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려고 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꼭 필요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시장 여건에서 여러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는 소위 큰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도전적인 스타트업이 계속 등장한다. 필자는 실리콘밸리의 한 콘퍼런스에 참석했을 때 ‘당신은 어떤 스타트업을 찾는가’라는 질문에 KPCB 등 유명 벤처투자가들이 ‘우리는 새로운 시대 (new-age)의 보험사, 새로운 시대의 제약사를 찾고 있다’고 답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기존의 산업 분류로는 어느 하나로 분류하기 어렵거나, 그 경계를 뛰어넘거나, 허물어버리는 파괴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을 찾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회사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부 회사는 앞서 이미 상세히 설명한 곳이다.  


23andMe: 1,000만 명 이상의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유전정보 분석회사에서 신약개발 회사로 변모 중이다. 구글 벤처스 등의 투자를 받았으며, 유니콘 스타트업이다.    

진저아이오: 스마트폰 사용 패턴에서 우울증을 측정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회사에 B2B로 정신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 병원까지 설립했다.    

피어 테라퓨틱스: 소프트웨어 기반의 중독 치료제를 개발하여 ‘디지털 치료제’라는 약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했다. 치료 목적의 소프트웨어로는 2017년 최초로 FDA 인허가를 받았다. FDA 규제 혁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빔 덴탈: 스마트 칫솔을 만드는 IoT 회사에서 시작하여, 이 기기에서 얻은 치아 관리 데이터를 기반으로 치과 보험 상품까지 출시했다. KPCB 등의 투자를 받았다.

오스카: 보험사 스타트업으로 시작하여, 각종 웨어러블 및 애플리케이션의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보험을 출시하고 있다. 구글 벤처스 등의 투자를 받았으며,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플랫아이론: 대량의 암환자 진료기록 및 실세계 데이터(real-world data)를 바탕으로 항암 신약 임상 시험 프로세스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국적 제약사뿐만 아니라, FDA도 이 회사의 고객이다. 제약사 로슈에 2조 원에 인수되었다.    

빔 덴탈은 IoT 기기를 기반으로 치과 보험까지 출시했다

여기에는 사실 애플과 아마존, 리프트와 같은 기업도 포함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은 2018년 애플워치4에 FDA 인허가를 받은 부정맥 측정 등의 기능을 추가하면서 의료기기 제조사가 되었고, 아마존은 2018년 의약품 배송 스타트업 필팩(PillPack)을 1조 원에 인수하면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차량 공유 서비스 리프트는 2019년 IPO에서 사업 목적에 환자를 집에서 병원으로 운송하는 것을 포함하였다.  


한국에는 이와 같은 도전적인 스타트업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눈치챘을 수도 있겠으나, 방금 언급한 기업들 중 대부분이 한국에서 불법이거나 규제적으로 회색 지대에 있기는 하다. (23andMe: DTC 유전정보 분석으로 불법, 진저아이오: 영리법인병원으로 불법, 피어테라퓨틱스: DTx 관련 규제 미비, 오스카: 보험사 건강관리 서비스로 회색지대, 플랫아이론: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 애플: 원격의료 논란, 아마존: 의약품 배송으로 불법, 리프트: 차량 공유 서비스로 불법)

차량 공유 서비스 리프트는 환자를 병원에 실어 나르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도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큰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회사, 기존의 경계를 허물거나 넘나드는 회사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창업가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유니콘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비슷한, 고만고만한 아이디어를 추구해서는 결국 그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는 회사가 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스타트업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큰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스타트업은, 어쩌면 이 부분의 해결이 선행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도 있겠다. 바로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수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스타트업의 풀이 전체가 커져야만 그중에서 ‘큰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도전적인 스타트업도 나오고, 큰 성공을 거두는 스타트업도 나올 수 있다.  


한국에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전체 숫자가 상대적으로든 절대적으로든 그리 많지 않다. 필자는 이를 미국의 한 행사에서 절감했던 적이 있다. 실리콘밸리에는 (이 책에도 여러 번 언급되었던) 락 헬스 (Rock Health)라는 초기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투자회사가 있다. 필자는 이 회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매년 가을에 개최하는 행사, '락 헬스 써밋 (Rock Health Summit)'에 종종 참석하는데, 2017년 참석했을 때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바로, 락 헬스에서는 매년 "800여 개"의 초기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매년 800개. 당시 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투자한다는 필자가 매년 검토하는 회사의 수는 1/1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사실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한국의 시장 크기 등을 비교하더라도 큰 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총 100개를 넘지 않을 것이며, ‘유의미한 매출이 발생한다’는 기준을 덧붙이면 그 숫자는 더 줄어들 것이다.  

락 헬스는 1년에 800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검토한다 

2018년 식약처가 개최한 한 행사의 패널토의에서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에 필요한 한 가지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필자는 ‘더 많은 씨앗이 필요하다’고 답했다.[ref] 일정한 숫자 이상의 스타트업이 있어야만 그중에서도 혁신적인 사례가 나올 수 있다. 숫자가 늘어나면 그중에서 시장의 니즈를 정확히 읽고, 이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창업자가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그 숫자가 너무 적다.  



이를 위한 정부의 역할 


사실 씨앗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도 충분히 내려야 하며 (투자금), 토양도 비옥하게 바뀌어야 한다 (규제 개선). 그래야만 씨앗이 꽃을 피울 수 있다. 어찌 보면 씨앗, 비, 토양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충분한 비가 내리고, 토양이 비옥한 곳에 더 좋은, 더 많은 씨앗이 뿌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를 내리고, 토양을 가꾸는 일은 개별 스타트업 수준이 아니라 시장 생태계, 혹은 관련 당국의 역할이 필요한 일이다. 다만 ‘스타트업의 숫자가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 또 관련 기관에서 무작정 숫자를 채우려고 할까 봐 걱정이다. 1년에 스타트업 ‘한국형 헬스케어 스타트업 1,000개를 배출하겠다"는 식으로. 국가 주도의 10만 군 양병설과 같은 정책이 통하던 산업화 시대는 이미 끝나도 예전에 끝났다.  


실리콘밸리의 유니콘들도, 미국의 ‘새로운 시대의 스타트업’도 결코 정부 주도로 탄생하지 않았다. 민간이 투자하고, 민간이 창업했으며, 정부는 그저 토양을 가꾸었을 뿐이다. 한국의 관련 부처도 토양만 가꿔주면 된다. 규제를 혁신하여, 합리화, 명확화, 일관화 하고, 국제 규제와 너무 동떨어지지 않은, ‘동조화된’ 규제를 만들어주면 된다. 또한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앞장서서 조율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혁신은 어디서 무엇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혁신이다. 그 혁신을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며 무지이다.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원한다면, 정부는 앞서 언급한 미국의 ‘새로운 시대의 스타트업’이 왜 한국에서는 대부분 불법인지부터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즉, 경기장에서 직접 선수로 뛰는 것은 민간에게 맞기고, 정부는 심판의 역할만 충실히 해주면 된다. 자신도 경기장에 뛰어들어서 직접 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헬스케어와 같은 혁신 분야에서 정부는 ‘무엇을 더 할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덜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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