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엔젤 투자자로서 한 사이클을 경험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헬스케어 스타트업 엔젤투자를 개인적으로 시작한 것이 대기업 팀장을 그만두고, 서울대병원에 재직 중이었던 2014년 정도였으니, 이제 6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내가 별다른 돈이 있을 리 없어서 대기업을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 천만 원을 고스란히 투자했다. 사업성은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소셜 미션을 가진 스타트업이었다.
이후 개인적으로, DHP를 시작한 이후에는 DHP를 통해서 투자 혹은 자문 등으로 직접 관여한 스타트업이 20개 정도가 된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이다. 한두 번 만나서 자문해주거나, 검토하고서 관여하지 않기로 결정한 곳들까지 합하면 숫자는 훨씬 더 커진다. 단적으로 DHP를 통해서 작년과 올해 검토한 팀만 해도 100개가 넘어간다.
6년의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이제는 한 사이클이 돌아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기간 동안 폐업한 곳도 있고, 폐업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기대에 미치는 성과를 못 보여주는 곳도 있다. 혹은 아주 견실하게 성장하고 있거나, 더 나아가 시장의 기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보이고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곳도 있다. 그리고 이제 상장을 바라보는 곳도 있다.
나와 관계를 맺었던 곳들은 2 by 2 메트릭스로 정리할 수 있다.
- 내가 관여하기로 결정한 곳들 / 관여하지 않기로 정한 곳들
- 좋은 성과를 보인 곳들 /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보인 곳들
이 구조에 기반해서, 각 사분면에 들어가는 팀들을 처음 만났을 때를 돌아본다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멋모르고 투자를 덜컥해버린 팀도 있고 (이후 성과는 좋지 않았다), 창업자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든, 과대평가하든) 잘못 평가했던 곳도 있다.
또 내가 만났을 때는 정말 별로인 아이템을 가지고 와서 여기는 안 되겠다.. 싶어서 몇 마디만 해주고 돌려보냈는데, 나중에 성공적으로 피봇팅하고 때를 잘 만나서 현재 기업가치 1,000억이 넘는 회사도 있다. 어떤 곳은 내가 조금만 이 바닥에 일찍 뛰어들었으면 투자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운 곳도 있다. 이미 코스닥에 상장했거나, 글로벌 VC에서 투자를 유치한 곳도 포함된다.
개인이라면 투자했을 텐데, 이제는 한 엑셀러레이터의 대표 입장이기 때문에 관여를 못한 곳도 있다. 혹은 우리 DHP가 너무 투자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투자하지 못했던 곳도 있다. 스타트업 쪽에서 엉뚱한 투자사의 오퍼는 받으면서, 정작 우리 오퍼는 받아주지 않아서 두고두고 (심지어 지금도) 아쉬운 곳도 있고. 그 대표님과는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결국 그 투자사에서 지금까지 특별한 밸류 애드를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러저러하게 다르게 행동해야지. 다르게 결정해야지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저 지금 눈 앞의 선택지들, 혹은 지금도 놓쳐버리고 있을지 모르는 기회들에 집중하자고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의 결정을 기다리는 곳들이 있다.
다만, 이것이 정말 기회였는지, 그냥 돌인지 아니면 보석이 될 잠재력이 숨겨진 원석인지는 또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원석을 보석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스타트업의 성공이라는 방정식에서 독립변수나 상수가 아니라, 중요한 종속변수이다. 즉, 결과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