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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스틸러 Feb 22. 2016

여행 운전 법 ' 브레이크를 밟으며 ~'

천천히 가는 길



키만 한 무거운 가방을 힘겹게 들쳐 업고 기대 듯 어깨로 밀친 숙소 문 넘어 세상은 아직 모두가 꿈나라에 있기 좋은 칠흑 같은 어둠 속 이였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오직 나를 위해 마을을 밝혀주고 있는 가로등에 도움을 받으며 이번 여행의 유일한 나의 동반자인 '제시'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시는 여행 시작과 동시에 이름을 붙여준 렌트 차량이었다.]


뒷트렁크를 여는  소리부터 짐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미세하고 작은 소리들이었지만 작고 조용한 동네를 가득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행여나 마을 주민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제시와 함께 동화 같은 작은 마을을 빠져나왔다.
아쉬운 마음에 바라본 백미러 넘어엔 마을에 자리 잡고 있던 나무 한그루가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렇게 정든 마을의 마지막 배웅을 받고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하염없이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 늦잠에 길들여진 나였기에 여행이라는 이유로 부지런을 떠는 것이 영~ 나 답지 않았다.
글썽이는 눈물을 닦으며 준비해둔 찐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김동률 씨의 '출발'이라는 노래로 그렇게 오늘의 여행은 다시  시작되었다.



어느덧 수평선 너머로 한참을 붉게 끓어 넘치던 하늘이 태양을 토해 냈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 길을 보며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머리 속엔 오로지 다음 목적지로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뿐 이였다.


쉽게 올 수 없는 여행이었기에 시간은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여행 요소 중  하나였다.


하늘도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듯  길 위에는 개미 한 마리 찾기 힘들 정도로 비어 있었다. 브레이크는 마을을 떠나 온 이후부터 쭉 장식품에 불가했다. 창밖으로는 뭉개진 풍경들이 빠르게 지나갔고 나의 시야는 경마장에 달리는  말들처럼 골인 지점 만을 향하고 있었다.





'아차!!'


먼저 밟은 건 제시의 브레이크가 아닌  정신없이 다음 목적지만 보고 달려가던 나의 마음에 브레이크였다.


그토록 숨 막히는 일상이 싫어 도망치듯 떠나온 여행 아녔던가.
내 마음속엔 한국에 위태로운 현실이 불안한 미래를 낳았고 그 불안한 미래는 불행한 현실을 만들어 나의 여유를 사치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만 아니면 내가 꿈꿔오던 여유로운 삶은 자연스레 나를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이곳에서 변함없는 삶을 반복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자 여태 주변만을 탓해오며 살아왔던 나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먼저 가야 하고 빨리 가야 했던 삶에 레이스를 멈출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었다.

잊고 있었던 브레이크를 조심스레 밟았다. 뭉개진 풍경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 어느덧 눈앞에 장관을 만들었다.
눈을 떼지 못할 정도에 장관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마을을 떠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줄어드는 속도 만큼 여행은 많은 볼거리로 풍족 해져갔고 부족할 것 같았던 시간은 넉넉해진 마음에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이전까지 해왔던 여행들이 문득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언가 보고 와야 한다는 미션에 연속이었고 여행 내내 시간에 쫓겨 지쳐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 여행 사진 속 나는 달랐다. 설렘과 웃음으로 가득 차 있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가 봐도 행복한 사람이었고 흉내 내는 여행이 아닌 진짜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어느덧 이번 여행도 며칠 남지 않았다. 수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언제나 돌아가는 일정에 대해서는 쿨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돌아가는 날이 싫지만은 않다.
더 이상 전력으로 달리지 않고 남들의 보폭과  상관없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천천히 오랫동안 걸어 가보려 한다.  
분명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이번 여행이 그랬던  것처럼...


글: 심스틸러
그림 :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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