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볼 수 없는)이별 ;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내리 두어시간을 울기만 했다. 그렇게 눈물이 오래 쏟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친척들 그 누구도 내게 다가와 그만 울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의 나도 같은 마음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 울고 있는데, 감히 어떤 위로를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울음이 좀 멎었다. 그제서야 친척들이 하나 둘 다가와 괜찮냐고 물으며 상주니깐 완장을 차고 빈소자리를 지켜야 한다며 상주자리로 나를 안내해주었다. 실컷 울었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정사진속의 아버지가 정말로 죽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영정 사진 뒷켠의 영안실에 아버지의 운구가 있다고 했는데, 운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아빠가 곧 나올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었다. 만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셨다. 우리 빈소 바로 옆의 빈소엔 이제 겨우 화환이 대여섯개 들어와 있는 반면, 아버지의 곁에는 더 이상 화환을 놀 자리가 없을만큼 많은 화환이 들어서 있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해주러 장례식장을 찾았다. 맞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헤아릴수도 없다. 그저 아픈 허리가 그 사실을 상기시켜 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하면 할수록 더 슬퍼졌다. 새어머니와 생활을 하신 이후 나와 친동생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다. 그리고 새어머니는 내 엄마가 아니었기때문에 사람들은 아버지도 내 이름을 딴 광섭이 아버지가 아닌 의붓동생의 이름을 따서 불렀다. 상주인 나와 맞절을 하고 누구지? 하고 어색하게 나를 바라보는 분들도 많았다. 그러면 내가 장남이라고 설명을 드려야 했다. 종종 니가 광섭이구나 하면서 아버지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때면 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저 무뚝뚝하기만 하던 아빠가 그래도 우리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리움이 더욱 복받쳤다.
그렇게 조문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보니 염이 끝났다며 아버지의 시신을 보겠냐고 물어왔다. 봐도 안봐도 후회할 것 같았지만, 둘 다 후회할 거라면 그래도 보는게 낫겠다 싶어 영안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보니 한번도 아버지를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나보다 큰 사람일 뿐이었지. 얼굴에 주름은 어떻게 지고 있는지, 키는 얼마정도가 되는지, 흰머리를 얼마나 많은지.. 몰랐다. 영안실에 들어가서 죽은 아버지를 마주하는 순간이 난 아직도 참 이상하다. 누워있는 아버지를 마주친 그 순간 처음 떠오른 생각은 '우리 아빠가 이렇게 덩치가 좋고 큰 사람이었구나'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냥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깐 시간이 지나는 동안만 허락이 되었고, 어느 순간 터져버린 울음에 난 영안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다. 그날의 내 멘탈은 이미 완전히 부서져있었다.
상주에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영정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문득 얼마전 할머니 제사날 아빠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빠는 할머니 제사용 지방을 쓰면서 '이제 이거 니가 해야될 일이니깐 잘 배워둬' 라고 했다. 그말이 자꾸만 귓가에 멤돈다. 뭔가 암시였나 하는 생각에 속상한 마음이 배가 되었다. 다시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아빠를 향한 속상함이 폭발했다. 이렇게 우리 남겨두고 떠나면 어쩌냐고 소리치고 싶었고, 나는 이제 어쩌냐고 소리치고 싶었고, 사랑한다는 말도 못했고, 효도 비슷한 것도 못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 갔냐고 소리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괜히 그렇게 소리치면 아빠한테 미안할 거 같고, 또 친척들이 더 힘들어 할 것 같고, 그런다고 아빠가 돌아오지도 않을건데.. 하기도 하고, 또 그냥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겁이났다. 그런 겁쟁이인 날 위해서 였을까?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랑 친했던 형님같으신 분이 들어오시더니 대뜸 욕부터 쏟아부으며 이XX가 이렇게 나보다 먼저가면 어쩌냐면서 큰소리로 울며 아버지 앞에서 한탄을 쏟아 부으셨다. 아저씨가 내뱉는 말들을 들으며 나도 내 속의 이야기를 저렇게 꺼내야 되는데 라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저 아저씨가 와주셔서 위로가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묻고 장례가 끝나기 전에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말겠다고 작은 다짐을 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2박3일이 지났다. 시험기간이었지만 병원에 도착한 후로 학교는 가지 않았다. 장례식 후 묘자리를 쓸지, 화장을 할지는 아들들인 나와 내 동생의 의견에 따르기로 친척들은 합의를 보았고, 우리는 묘자리를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상주인 나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영구차를 타고 집안의 선산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아니, 그 이후에도 내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입관을 하고 먼저 흙을 한 삽 떠서 아버지를 묻어드렸다. 그렇게 아버지는 정말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면 지금 해야하는데, 이 망할놈의 새가슴이 말을 안 듣는다. 새까맣게 차오르는 슬픔을 그냥 혼자 눈물로 삼킬뿐이다. 고모들도 나와 함께 오열을 하고, 새어머니도 오열을 했다. 그렇게 울고 울고 울다가 장례절차가 끝이 났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고 나니, 어머니도 너무 그리워졌다. 또, 엄마한테 많이 미안했다. 떠나시는 그날 눈물 한방울 떨구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너무 미웠다. 그날부터 나는 이별이 너무 무서워졌다. 다시는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너무 절실하게 알아버렸다. 잠깐의 이별이 아닌 이제 다시 볼일 없는 그런 이별은 너무나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다시는 볼 수 없는)이별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이 되었다.
- 오늘 쓴 이 글은 지금까지 쓴 어떤 글보다 힘든 글이다. 이미 지난일이고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가보다.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고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이 KTX열차 안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