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보는 세상
아침 출근길에 2시간 저녁 퇴근길에 2시간 정도, 보통 일주일에 4일정도 서울에서 시흥으로 여행을 한다.
처음 4시간이 내게 주어졌을때,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 지 알 수 없었다. 책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말이 2시간이지 20~25분씩 4번을 끊어서 사용해야 한다. 사람이 많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겠다는 의식을 하면서 책을 읽는건 나에겐 맞지 않았다. 어떻게 보내야 나에게 주어진 4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30분 글쓰기와 연계를 하면서 주어진 4시간을 나름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관찰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두 눈으로 세상을 담는다. 그렇게 담은 세상에 내 마음을 투영하고, 내 생각을 가미한다. 그러다보니 재미있는, 그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소소한 재미들을 알아채게 되었다. 어떤 날은 나와 똑같은 신발을 신은 사람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낙엽이 떨어져있는 이 길이 이런 느낌이었나?하고 새삼 놀라기도 한다. 지하철 맞은 편에 앉은 사람들의 다양한 포즈도 볼 수 있고, 버스 손잡이가 왜 이정도 간격으로 달려있는지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었는데 신발은 영 아닌 사람도 발견하고, 음식이 뭍은 소매나 지퍼가 열린 가방, 또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카톡도 의도치 않게 훔쳐보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관찰자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나는 그 순간 절대 권력자가 된다. 철저하게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나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나만의 기억으로 마음에 또는 기억에 새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만난 2명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한명은 추위를 막기 위해 두른 목도리에 하얀 종이쪼가리가 붙은채 내 바로 앞 좌석에 앉은 여자이고, 다른 한명은 회색 코트를 입었는데, 코트 아래쪽에 옷가게에서 사용하는 도난방지택(자석으로 떼는 방식)이 붙어 있는 사람이었다. 두번째 사람은 미처 성별을 파악하지 못했다. 짧은 머리였지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창밖을 보다가 버스 안으로 시선을 다시 가져온 그 순간, 앞자리에 앉은 그 사람의 목도리에 붙은 하얀 종이쪼가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거슬렸다. 당장 손을 뻗어 떼서 없애버리고 싶었는데, 내 몸이 아니다. 심지어 여자다. 괜한 오지랖을 부리다가 아침부터 서로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종이쪼가리가 크기도 아주 작은데다 목도리도 꽤 두꺼운 것을 하고 있었으니 그냥 슬쩍 떼면 알아채지 못하겠지?하면서도 행여나 '뭐에요?!'를 듣진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어깨를 톡톡 두드려 이 사실을 알려줄까도 싶었는데, 보통 이정도에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을거라 생각하니, 괜히 어색한 상황이 되진 않을까 싶기도 하다. 스타킹 올이 나가거나, 치마가 말려 올라간 것도 아닌 이정도에 괜한 오지랖이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뜯어볼까 어쩔까 하다가 두번째 사람이, 정확히 말하면 코트의 아랫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옷가게에 가면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자석을 이용해서 뽑아야만 뽑히는 그 도난방지택이 떡하니 코트 아랫자락에 붙어있는게 아닌가? 혹시나 옷의 데코 같은 것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그냥 그 방지택을 제거하지 않은것이 분명했다. 괜히 말해주면 버스안의 다른 사람들도 알게되고 괜히 민망함을 더 심어주는 것이 될까봐 말을 건낼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나의 생각은 '혹시 어디서 훔친건데 저걸 떼지 못한걸까?..아니야. 저게 달려있다는 걸 알면서 그냥 입었을리가 없어. 그럼..누가 훔친걸 선물해준건가? 그것도 아니라면...음..혹시..어느 옷가게 매장 직원인데 그냥 슬쩍 하루 입어본 건가?' 뭐..이런 쓸데없는 것까지 떠올려보게 되었다.
재밌었던건, 두번째 사람이 내 시선을 빼앗은 그 시간 이후로 첫번째 여자의 하얀 종이쪼가리는 다시는 나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다 보니 버스에서 내릴때가 되었다. 결국 난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냥 철저히 관찰자로서의 생각만 더듬다 버스에서 내렸다.
길을 걷다 우연히 어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보통 빠르게 피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다. 누군지 잘 몰라도 가볍게 미소정도 지을 수도 있을텐데, 그랬다가는 '뭐야 기분 나쁘게 왜 웃어' 라던가 '나 오늘 어디가 우스운 꼴인가'하고 생각하는 것이 더 보편적인 것 같다. 종종 이리저리 둘러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어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 마음속으로는 그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나도 고개를 돌린다. 가끔은 여러번 눈이 마주치는 사람도 있다. 그럴때면 '뭐지? 날 계속 쳐다보는 건가?' 할때도 있고, 그 사람의 표정이 뭔가 불편해지면 슬쩍 억울한 그런 느낌도 든다. 요즘은 '시선강간'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로 사실 우리사회는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마주쳤을때 눈을 둘 곳이 마땅히 없다.
갈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다보니 세상이 각박해져 간다. 아무리 선의로 시작해도 상대방에게는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점점 더 주저하고, 관계들은 차가워져간다.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 나는 참 안타깝다. 이 세상 그 어느 민족보다 정이 많고 따듯한 사람들이 우리 한국인들인데, 그런 따스함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아무튼,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나는 절대적 관찰자 시점으로, 내 멋대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작은 행복들을 발견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