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하나
가끔 그럴때가 있다. 이유도 모른채 모든 것으로 부터 의욕을 상실하게 되는 그런 때가 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어떤 이유로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냥 툭, 그런 때가 온다. 그럴때면 마음이 한 없이 공허해진다. 그냥 공허한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공허해진다.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끌리지가 않는다.
어디에도 끌리지 않는 그 마음이 잠들기 전에 숨을 쉬듯이 공허를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그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지나온 시간들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내가 한 일들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마음이 함께 무너지면서,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린다. 그리고는 나 자신도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그 무너져내림에는 슬픔이나 기쁨같은 감정도 묻어나지 않은다. 그냥 모래시계의 모래가 아래로 떨어지듯, 그렇게 그냥 흘러내려 사라져갈 뿐이다. 그렇게 멍의 세계인지 망의 세계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의식이 흘러간다. 이대로 계속가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아무것도 아닌채로 도착할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닌곳에 아무것도 아닌채로..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보면, 어느 한 순간, 알 수 없는 어떤 에너지의 작용으로 의식에 틈이 생긴다. 그 틈으로 세상의 무언가가 흘러들어와 물잔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그 한없는 공허함에 균열을 일으킨다.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향기로, 때로는 오감을 넘은 그 어떤 느낌으로
그러고나면 다시 마음속에 욕망이 샘솟는다. 때로는 먹고 싶은 것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포르노그라피가 보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기도 하고, 그러다 눈물이 나기도 한다.
공허.둘
가진 것이 많은 자는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인가?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얻을 것이 많은 사람인가?
질문 자체에 공허함을 느낀다.
그걸 물어서 무엇을 하려고?
답이 있기는 한 것 같아?
이렇게 생각이 다투다가도 이내 픽 하고 사라져버린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공허가 들어 앉는다.
나는 어디에서 온 걸까?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이며?
영혼은 따로 있는건지?
이 생이 끝나면 다음은 무엇인지?
공허를 치우려 질문들이 쏟아지지만, 어느 하나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없다. 공허한 질문이다.
무언들 있으리오
무언들 있으리오
공허.셋
공허함을 마주한다.
텅 비어서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공허'라는 두 글자에 담긴 저 알 수 없는 무언가.
가만히 들여다본다.
사로잡히면 안된다.
그랬다가는 이 마주함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너는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
내게는 어떠한 연유로 찾아 온 것인가?
묻고 또 묻는다.
그렇게 공허와의 기싸움이 시작된다.
공허가 묻는다.
너는 나를 알아서 무엇을 하려는가?
마땅한 대답이 내 안에 없다.
나는 무엇이 알고 싶어 너를 마주했는가?
공허함은 두려운가? 그렇지 않은가?
공허함을 피하고 싶은가? 그렇지 않은가? 아니면 받아들이고 싶은가?
머리가 지끈 아파오고, 명치가 답답해진다.
이는 나 때문인가? 공허함 때문인가?
그 모든 것이 의미 없다면 나는 바름을 선택하련다.
그 조차 의미 없다고 해도 나는 바름을 선택하련다.
바름을 데려오자 공허가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오늘 공허는 내게 바름을 선물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