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해가 길어져서일까? 오후 6시가 되어 가는데도 세상은 마치 대낮처럼 환하기만 하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퇴근을 하고 홍대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버스에서 타고 내린다. 어딘가 신나보이는 얼굴의 사람들도 있고, 별다른 표정이 없는 사람들도 있고, 버스에 빨리 오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스 뒷문으로 뛰어 오르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사람구경을 하다보니 집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그런걸까? 집으로 가는 버스는 비교적 한적했다. 가장 선호하는 맨 뒷자석 바로 앞자리는 이미 양쪽다 다른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그 다음으로 선호하는 뒷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으려다가 버스 뒷바퀴 턱이 솟아올라 있는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마음이 그리 이끌렸다.
두다리를 오므리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아서 창밖을 바라봤다. 늘 바라보던 건물들이고 가게들이지만 그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창밖의 뷰는 새롭기만 하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니 여자들의 바지와 치마가 부쩍이나 짧아졌다. 반팔을 입은 남자는 종종 보여도 반바지는 그리 쉽게 눈에 띄진 않았다.
그렇게 사람구경을 하며 가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진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앞자리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90도 정도 오른쪽으로 돌려 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이 마주치자 여자도 나도 고개를 돌렸다. 괜한 어색함이 마음에 뭍었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잠시후 또 그런 기분이 들어 고개는 돌리지 않고 시선만 옮겨보니 이번에도 같은 각도로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슬쩍 보고 있었다. 창밖의 무언가를 보다가 시선이 옮겨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앞자리의 여자는 수시로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보았다. 자꾸 흘겨보는게 신경이 쓰여 고개를 돌리면, 바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그렇게 길게는 몇분동안 나를 흘겨보았다. 그렇게 되자 그 여자의 시선이 아니라 이제는 그 여자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나를 흘겨보는게 맞는건지? 맞다면 왜 그러는건지?가 궁금했다. 여자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엄두는 내지 못했다.
이제 내 시선은 창밖보다 내 앞자리에 앉은 이 여자에게로 옮겨졌다. 얼굴은 잘 볼 수가 없다. 뒷모습과 얼굴 우측면이 슬쩍 보이는 정도다. 어깨너머로 그녀의 휴대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와 업무 연락을 주고 받는 것 같았다. 내용을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름에 직책이 함께 표시된 사람과의 대화라 그렇게 생각했다. 문자를 주고 받는 건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보고 싶은건 여자의 얼굴이었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문자와 카톡을 번갈아가며 했다. 그렇지만 내 전화기는 아무런 알람을 보내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거나 마주친 사람은 아니겠지 싶었다.
여자는 계속 나를 흘겨보았고, 나는 틈틈히 그 시선에 눈빛으로 응했다. 그랬더니 이 여자가 좀 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냥 창밖으로 보는게 아니라 이건 분명하게 나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고개가 돌아 상대방의 두 눈동자가 다 보였다. 당황스러웠다. 이런 상황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왜그러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음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쳐다보는 것이 확실하다고 확신할 수 있냐는 의심을 시작으로, 혹시 나한테 관심이 있나? 하는 자뻑, 그래서 나를 쳐다보는 게 맞으면 뭘 어쩔거냐는 생각과 어쩌면 미친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사람들을 소소하게 바라보며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던 나의 시간이 완벽하게 깨져버렸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의 시선 하나에 사로잡힌 시간이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좀 더 정류장에 가까이 갔을때 뒷문 앞으로 이동했겠지만 오늘은 좀 더 일찍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기도 했고, 또 그 앞에 서 있을때도 나를 쳐다볼지 궁금했다. 빤히 쳐다본다면 내리기 전에 물어볼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버스 뒷문에 서서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여자는 내가 버스에서 내릴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버스 뒷문이 열리고 버스에서 내렸다. 익숙한 건물과 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