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구 그리고 퇴사
코엑스에서 원석을 찾아 헤메이고 있었다. 한 남학생이 눈에 확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몸매, 소탈해보이지만 멋을 낸 패션센스까지.. 모델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친구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네면서 소개를 시작했다. 명함을 받아는 친구는 아직 몇마디 꺼내지도 않았는데, 잠시만요. 라고 하더니 메고 있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친구는 4x6사이즈 사진 수백장을 꺼내더니 빠르게 한장 한장 넘기면서 사진 3장을 골라서 내게 건네주었다. 프로필 사진이었다. 프로필 사진이 몇백장씩이 있는 이 친구는 뭔가? 무슨 사진이 그리 많냐고 물었더니, 소속사가 없이 준프로로 모델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패션쇼에 나가서 찍힌 사진들이랑 프로필 사진중에 나름 괜찮은걸로 3장 고른거라면서 잘 봐달라고 했다. 그렇게 그 친구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일단 당분간은 모델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해 온 일이기도 하고, 현재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최고가 되기는 좀 어려울 것도 같고, 또 모델이 수명이 긴 직업이 아니라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배우로 전향을 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은 바쁘다며 며칠 뒤에 사무실로 찾아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다른 친구는 명동에서 만났다. 한눈에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큼 이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나름 묘한 매력에 끌렸다. (내 개인의 호불호에 따른 판단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가가 말을 걸어보니 연극영화과에 재학중이라고 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연극을 했고, 그때부터 연기가 좋아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소속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신에게는 좀 욕심같다고 했다. 아직 학생인데다 연극무대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무대에 서는 일이라면 어느 것이든 관심 있다고 했다. 그렇게 그 친구도 회사에 오디션을 보러 오기로 했다.
또 한 친구 역시 코엑스에서 만났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누가봐도 예쁘게 생긴 친구였다. 큰 눈동자에 하얀피부, 단발머리에 옷입은 센스도 좋았다. 조심스레 다가가 명함을 건네자 괜찮다면서 뿌리쳤다. 그대로 쉽게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다시 쫒아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얼마전까지 이쪽일에 관심이 있어서 개인 매니져까지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쪽은 영 아닌 것 같아서 그만두고 조만간 군대를 갈 계획이라고 했다. 개인 매니져까지 있었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왜 그만 두려고 하는지 물었더니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잘생긴 얼굴 덕분에 다음까페에 팬이 5천명 정도 있는데다, 강동원이랑 같이 영화 늑대의 유혹 오디션도 봤다고 했다. 그런데 오디션을 볼때마다 떨어져서 이 길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문득, 맞지 않는 옷들을 입으려 한게 아닌가 싶었다. 잘 생기긴 했지만 박력보다는 부드러움이 많은 친구였다. 목소리도 가는데다, 눈짓이나 손짓도 부드러웠다. 왜 그런 질문을 갑자기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기수업을 받은 적이 있냐고 물었는데, 그런적은 없다고 했다. 그럼 어떤 노력을 해봤냐고 물었더니 딱히 그런게 없다고 했다. 그럼 연습을 해봐야하니 않겠냐고 했더니, 이젠 매니져도 없고 안된다고 했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매니져가 되는게 내 목표라고 말했다.(모든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다) 이 말이 그녀석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이 친구도 사무실로 오기로 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아카데미 같은 거에 등록시키지 말라고 했다. 이쪽 바닥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는 친구였다. 하긴, 내가 처음은 아니겠지 싶었다.
스타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쪽에 대해 여러가지 경험이나 생각이 있는 3명의 친구를 만난 것은 좋았으나 고민이 생겼다. 회사 입장대로면 이 친구들도 아카데미에 등록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나의 안목을 믿을 수도 없은데다 어느정도 하는 친구들은 지천에 널렸다는게 회사 입장이었다. 나는 팀장에게 이 친구들은 아카데미 등록 없이 데리고 있으면서 오디션 기회를 주면 안되냐고 물었다. 팀장은 그런 친구들일수록 그 친구들의 기에 눌리지 말고, 부족한 부분을 트레이닝을 통해 키울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더 이야기 해 봐야 소용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나 말고 팀장보다도 더 높은 사람에게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마저도 거절당했다. 나는 그때 이 회사에 비젼이 없다고 생각했다. 3명의 친구들에게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두 친구는 그렇게 떠났다. 며칠 후, 마지막에 만난 친구는 우연히 다른 회사와 접촉이 되어 소속연예인이 되기로 했다고 했다는 소식을 내게 전해주었다. 다행이었다.
두번째 소개한 친구는 집안 형편상 6개월을 다 들을 수는 없고, 나눠서 들으면 안되냐고 물어왔다. 그 친구는 어머니까지 만나뵈었다. 돈과 관련된 일이라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했다. 나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어머니는 청년이라면 믿어보겠다며 허락을 해 주셨다. 그렇게 내 첫 연습생이 생겼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 오디션 정보가 들어오면 아직 트레이닝 기간이었지만, 기본적인 연기를 해 왔기 때문에 일단 기회라도 줘봐야 하는거 아니냐고 졸라서 오디션에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그 친구에게 미안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출근4주차, 팀장이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일하면 가져가는 돈이 형편없이 적을텐데 그래도 괜찮냐며 빨리 학생들을 영업해와야 한다고 말을 했다. 돈 많이 안 가져가도 괜찮다며 기본급만 받아도 좋다고 했더니, 지금 기본급도 못가져갈 정도라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기본급이 기본적으로 3명의 학생을 등록했을때 나오는 거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처음에 면접볼 때 인센티브 제도를 이야기하길래 확실하게 물어봤었는데, 이제와서 아니라니? 내가 잘못들었을 거라고 했다. 절대 그럴리가 없었다. 그랬다면 나는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무슨 보험도 아니고...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를 듣고 3일을 더 보내는 동안, 팀장은 계속 나에게 학생들을 아카데미에 등록해야 한다고 푸쉬했다. 위에서 팀성적이 그게 뭐냐고 압박이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적성도 맞고 능력도 충분히 있으니깐 좀 과감하게 나가면 된다며 능력을 보여달라고 했다. 고민이었다. 심하게 고민이었다. 그만두자니 내 첫 연습생이 마음에 걸리고, 계속 하자니 어떤이의 꿈을 이용하거나 월급없이 일해야했다. 팀장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더니 바쁘다며 나와의 대화를 회피했다. 아마도 내가 무슨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대화를 시도했다. 내 대화를 피하려면 팀장과 언성이 높아졌고, 그때 회사 대표가 들어왔다. 그렇게 팀장과 나는 대표와 3자대화를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결국 퇴사하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그러자 대표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이곳과 내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팀장과 대표는 그렇지 않다며 나를 또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진짜 이유를 말하라고 했다. 아니 진짜 이유라니? 이게 뭔 소리야.. 나름대로 보는눈도 있고, 말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방송관련 지식도 많은데다 회사에서 일반 직원중에 오디션도 제일 잘 진행하는데 회사와 안 맞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가 왜 싫은지 말해달라고 말해달라고 날 재촉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러이러한 부분들의 부당함을 나는 감당할 수 없다고 하자, 남의 회사를 그렇게 함부로 평가하는게 아니라면서 나가도 좋다고 했다. 그러니깐 결국 똥묻은 개가 될지언정 내게 재라도 묻혀야 속이 시원했나보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습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입사 첫 달, 한달을 다 채우지 못 한 4째주 목요일, 첫 직장에서 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