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de of my college life
어제는 아침에 눈뜨자마자부터 스케쥴이 빡빡했다. 그래서 30분 글쓰기를 그냥 넘어가야했다. 피곤에 쩔어 졸린 상태에서는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부터 약간의 룰을 변동하기로 했다. 30분을 연속으로 쓰지 못하더라도 최소 15분 단위로 2번까지는 나눠 쓸 수 있도록 말이다. 연속으로 30분이라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게 어려운 그런 날이 있을거라고는 생각치 못 했던게 불찰인듯 싶다. 또 하고 싶은 딴짓거리들이 많은 것도 이유가 되겠다. 15분씩이라도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이동중에도 작성하기에 편안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정확히는 13년만에 모교인 동아방송예술대학에 가서 중계를 했다. 사실 영상일을 하더라도 중계라는 것을 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학교 방송국인 DBS활동을 하면서 대학시절 중계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이 기초가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딱히 중계시스템 팀에 들어가서 일한적이 없지만, 중계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의 영상중계는 단지 13년만에 학교에 가서 하는 중계이기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그건 바로 DBS의 OB멤버들이 한팀을 이뤄 진행을 했기 때문이다. 3기인 내가 TD겸 중계영상연출을 맡고, 3기 동기 친구가 VJing을 맡았다. 5기 1명, 6기 1명, 9기 2명 이렇게 4명이 카메라 1,2,3,4번을 맡아주었다. 학교를 떠난지 10년이상 지난 친구들이고, 현업에서 실제 동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학교안에서 진행되는 행사의 중계로 합을 맞춰본 것이다.
이럴 수 있는 힘, 이것이 내가 (정확하게는 학교 부속기관이지만) 우리 동아리 DBS를 선택하길 잘 했다고 항상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고, 또 내가 사랑하는 이유다. 우리 DBS외에도 많은 동아리들이 졸업후에도 선후배들이 함께 어울리며 지내고 있겠지만, 우린 좀 더 특별한 것 같다. 많은 선후배들이 단지 동아리 활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관련된 현업에서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 미디어, 공연 등 서로 연계된 다양한 곳에서 현업으로 일하는 선배들이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있다. 3회 입학생인 내가 졸업을 할때는 선배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졸업한지 어느새 13년, 많은 선후배들이 방송계, 공연계 곳곳에 포진들을 해 있다.
또 하나 학교 방송국 활동이 좋았던 것은 방송 관련해서 사회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다양한 것들을 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방송국 활동을 하던 시절, 우리 기수는 매주 4~50분 분량의 TV 프로그램을 4편 학교 방송 시스템을 이용해 송출했고, 매일 1시간씩 3회 FM방송을 진행했다. 3~4명이 한팀이 되어 기획하고 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때는 중계팀을 꾸려 행사 영상 중계를 했다. 이렇게 지난 시절을 생각하고 있자니 정규 수업을 소화하면서 매주 1편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틈틈히 중계까지 했던 그때가 그립다. 그러면서도 과 친구들과도 어느정도 친분을 유지했고, 또.. 부끄럽지만 장학금도 받았다.(이건 내가 좋아하는,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 중계가 좋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그 묘한 짜릿함이 있다. 실수가 발생하면 안되지만, 발생하더라도 임기웅변으로 잘 넘겨야 한다. 순간 판단력이 좋아야 한다. 플랜A,B 정도로 계획해서는 안된다. 설마 그런일이 일어나겠어? 하는 부분까지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2000년, 우리기수가 DBS의 주도권을 가지고 새학년 새내기들을 맞이할 입학실을 준비하던 때였다. 당시, 우리기수중에 신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녀석이 있어서 학교 입학식을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를 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시스템을 구축했고, 우리학교의 입학식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다. 그리고 그때, 한 방송사에서 이색 입학식이라는 주제로 (구)서울예전과 우리학교 그리고 또 하나의 학교(기억이 안남)를 취재해 방송을 했다. 방송국에서는 입학식 중계 영상은 우리에게 받기로 하고 스케치 촬영만 간단히 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오늘 입학식 테이프를 방송국에 건네기 위한 컨버팅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헉! 테이프에 녹화된 영상이 없었다. 당시 기술감독이 나였고, 이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었다. 분명히 녹화 버튼을 눌렀는데, 뭔가 이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입학식은 끝났고 이 사건은 되돌릴 수 없다. 입학식이 끝나고 바로 OT를 가야했는데, 당시 나의 멘탈은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았고 그냥 어딘가 콱 틀어박혀 있고 싶었다. 그 날 이후, 방송관련 일을 하면서 녹화는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뒤, 나는 플랜Z까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불안한 요소들을 미리 생각해보고 점검하는 버릇이 생겼다. 단, 내가 모르는 분야는 뭐..답이 아직도 없다. 하하하..
아..또 시간이 다 되었네. 아무튼 이 글은 내가 어제 적고 싶었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