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것, 치울 것, 쓸고 닦을 것
며칠간 비운 집은 그동안 어질러놓은 상태에 빈집효과까지 더해져 더 지저분해보였다. 캐리어 안에서 제주도에서 입었던 빨래들을 꺼내 놓고 있자니 당장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빨래감들을 세탁기에 집어 넣는다. 건조대에 걸려있는 지난번 빨래감들을 게어서 옷방에 집어넣고 청소기를 돌리려다 일단 물 한잔 마시고 싶어서 냉장고를 열었다. 김치통, 김치통이 눈에 자꾸 거슬린다. 2년묵은 김치가 들어있다. 냉장고가 좋지 않아 먹을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 사실은 이미 수개월전부터 알고 있던 터였다.
김치를 처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처리대상 0순위, 즉각처리태세가 발동했다. 처리해야할 양은 약 5-6kg정도다. 10리터짜리 음식물쓰레기 봉투 는 이미 준비되어있다. 좁은 싱크대에서 사투를 벌이다가는 온몸에 김치국물칠갑을 할 확률이 높다. 걸친 옷을 모두 훌렁 벗어 던지고는 김치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섰다. 김치통 뚜껑을 여니 시큼한 김치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김치를 넣는다. 한방울도 흘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건 무리였다. 하지만 이정도면 클린샷으로 봐도 무방하다. 김치처리는 끝이 났는데, 쓰레기봉투에 빈자리가 있다. 오후 6시에 꼭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다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치킨먹다 남은 무와, 참치를 포장해왔을때 남은 락교와 생강절임이 보인다. 김치와 운명을 함께하게 만들었다. 냉장실에는 딱히 타겟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 목적지는 냉동실이다. 냉동실엔 타겟이 많다. 여차저차해서 얼려둔 음식들이 있다. 얼어있어서 굳이 버릴 필요는 없지만, 1년이 넘도록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피도 눈물도 없이, 김치속으로 묻어버렸다. 어느덧 봉투가 꽉 찼다. 아직 버릴것이 좀 더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다. 그렇게 냉장고가 가벼워졌다. 냉장고 안이 잘 보이게 되니 지저분한 부분이 눈에 띈다. 예상에 없던 냉장고 청소도 시작되었다. 새거처럼 만들 심산은 아니다. 그냥 음식물 잔해나 소스들을 닦아내고 싶을 뿐이다.
#헉냉동실에서꺼낸만두를냉장고위에올려두고그냥나왔다. #음식물쓰레기가또생겼네엉엉
냉장고 청소는 전부터 해야만 했던 일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냄새와 국물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그렇게 미루던 일이다. 뭐, 혼자 사는 사람중에 결벽증이 있거나 유별나게 깔끔을 떠는 사람이 아니라면, 음식물 버리기와 한번쯤 이런 다툼을 해 봤을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보면, 버릴것은 점점 더 많아지고, 악취와 국물에 대한 위협도는 더욱 증가한다.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의 깨끗한 냉장고를 만드는 것운 이미 불가능하다. 설령 새 냉장고를 쓰게 되더라도 그렇게 깔끔하게 살 것 같지는 않다. 반찬 뚜껑이 한 두개 정도 서로 바뀌어 있고, 케찹 뚜껑이 꽉 닫히지 않아 조금 흐른 흔적이 있는 그런 냉장고가 나는 정감이 가고 좋다. 누군가는 내 청결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난 그렇게 아주 조금은 더럽고, 무질서하고, 가끔씩 신경이 쓰이는 그런 상태가 좋다.
그나저나 배가 고파서 밖에 나왔는데,
아직도 버릴 것과 치울 것 그리고 쓸고 닦을 것들이 많다.
내 마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