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소홀히 하다 보니 글이 점점 흑백의 무채색이 되어가고 있다. 표현을 하는데 능숙하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글감은 점점 떨어지고 흐름도 획일화되고 있다. 주제는 인생 이야기나 그때그때의 관심사가 고작이고, 흐름에도 특별한 변주나 일관성 없이 느낌대로 대충 때우곤 한다. 바야흐로 나는 글의 기갈(飢渴) 시대, 메마른 글의 시대를 걷고 있는가 보다.
풍족한 글을 쓰고 싶다면, 글감을 성심성의껏 선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글감에는 다양한 사연이 숨어있다. 하나의 글감에 내 삶의 파편들과 흔적들이 어려있는 것이다. 그 사연을 풀어내다 보면, 글감은 무채색의 수필에서 구출되어 내 삶의 온기와 색깔을 전해준다. 삶에 대한 애정이 곧 글쓰기의 시작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내 군 생활에는 사연이 있고, 애정이 있다. 입대하기 전의 떨림, 훈련소 첫날밤, 처음 마주한 선임들의 모습, 조금은 어수룩한 후임들, 서로 땀을 나누며 받던 훈련, 처음 저격 소총을 쥘 때의 긴장감, 후임들에게 저격술을 알려주던 기억까지 모든 장면들이 나에겐 소중하다. 그렇지만 혹자는 나에게 "너도 똑같이 철원 끝까지 끌려와 놓고선 여기가 좋느냐"며 비수를 꽂는다.
기실은 나도 군 생활보다 흥미가 당기는 것이 있다. 또, 일 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몰두해서 해 보고 싶은 일도 있기 마련이다. 혹여 군에 오지 않았다면 내 삶은 다른 조각들로 채워졌을 수도 있을 테다. 다만 어차피 가야 할 군대 라면, 다시 말 해 결국 내 삶의 일부가 될 일 년 반이라면 알록달록하게 채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철원 땅에 첫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삶을 색칠하기 시작했다.
비수를 던지는 이들은 내가 군 생활을 대하는 태도를 두고 "노예 마인드가 잘 박혀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원치 않게 끌려온 곳에서 열과 성을 다하고 추억을 간직하려는 모습을 보며 하는 말이다. 그이들은 통상 군 생활이 너무 길다고, 노예로 지내고 싶지 않다고 호소하곤 한다. 본인의 삶을 고통으로 색칠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나 또한 고역이기도 하다.
아무개에겐 일생일대의 고난이, 나에게는 좋은 글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아이러니는 삶을 애정하는 정도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타의로 흘러가는 고된 시간 마저 소중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원치 않더라도 조금씩 애정을 쏟다 보면 공허하던 일 년 반의 시간도 후에는 예쁘게 채워져 있을 것이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애정을 담아 낸 삶의 파편을 공들여 간직한다면,
먼 훗날 조각조각들을 안주 삼아 술 한잔하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25.06.26, 지경리대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