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
낯선 사람을 호구 조사 없이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즐기는 것만큼 꺼려하는 일 중 하나는 새로운 사람과 친해져야 하는 과정이다. 서로의 이름 이외의 가족, 과거사와 고향, 학교, 때론 부모님, 최근에는 남편까지 모든 걸 묻고 나서야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조금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낯선 곳의 여행지에서는 모두가 새로운 자신과 마주하면서 현재에 충실할 때가 많았는데, 오래 살려고 온 내 터전에서는 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순간이 모두 인정되어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일 때가 많다. 호구조사 없이 사람을 믿는 건 아직까지 힘이 드는 사회탓이겠지만 말이다.
최근에 나와 만나 한 여인은 나와 호구조사 따위와 어떤 약속도 없이 서로를 믿기로 했다. 물론 서로를 믿자고 계약서를 쓰거나 입 밖으로 다짐을 한 건 아니지만 우린 그냥 모든 걸 믿고 있다. 자연스럽게 맛있는 커피를 서로 소개하고, 맛집을 찾느라 고심하지 않아도 가까이에 있는 가게에서 팥죽 한 그릇해도 괜찮은 사이가 되었다. 물론 우리가 이렇게 가벼운 만남만 하는 건 아니다. 서로의 호구조사 없이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고, 그녀도 내게 그녀가 하는 일을 소개한다. 요리치료와 원예치료를 하는 그녀는 가끔 예쁜 화분도 내가 일하는 곳으로 들고 와서 정갈하게 쓴 이름표와 함께 볕이 잘 드는 곳에 두고 가기도 한다. 그녀는 내가 오랜만에 만난 자연스러움이다. 경쟁도 없고 잘난 것도 없으며 삶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그녀가 나는 참 좋다.
또 다른 그녀는 우연히 그녀의 가정사를 내게 들켜버렸지만 난 그 아픔을 더 깊이 묻지 않는다. 그녀가 내게 아픔을 더 자세히 이야기한다면, 그때 자연스럽게 들어주면 되는 것이지 정확하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물론 질문이 상실한 우리 사이에서, 여러 번 그녀를 만났지만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그녀의 어중간한 표정이 조금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가 전하는 강의를 들어보니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말투가 그녀는 원래부터 그런 차분함으로 삶을 살아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그 차분함으로 내 옆에서 나와 조금씩 나아가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반면, 늘 활기찬 또 다른 그녀는 내가 묻지 않아도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세 번째 만남만에 그녀의 가족사까지 모두 알아버리게 된 나는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어쩐지 자연스럽게 펼쳐진 호구조사의 세계가 그녀를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만드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녀의 배경과 삶을 알아버리니 이상한 선입견? 같은 게 생긴다. 왠지 그녀를 이해하는데 맞춰진 기준이 있어야만 할 것 같고 그게 부정되면 지금 내가 그녀와 만들어가는 관계도 의미가 없을 것만 같다.
그리고 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에 매진하는 또 다른 그녀는 솔직하고 즐겁고 당당하다. 심지어 엄청 똑똑한 그녀는 머리회전 소리가 들릴듯한 눈빛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래서 솔직히 그녀와 하는 일은 믿음이 간다. 무엇을 함께해도 정확한 그녀의 결과들이 깔끔하고 맘에 든다.
그리고 지금 내겐 또 다른 그녀들이 있다.
정읍에서 혼자 연구소와 청소년 공간을 운영하면서 혼자 있다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내 주변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 물리적 공간에서 살을 부딪히며 호구조사와 모든 걸 드러내며 관계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자연스럽게 지키며 함께하는 사람들 말이다.
내 성격 탓일 수도 있겠지만, 작은 공간을 운영하면서 꿈꾸던 것들은 청소년을 향해 있기도 했지만 나를 위한 작은 공간이라는 개념도 어느 정도 할애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력서를 받아 들고 과거와 능력을 운운하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하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이곳을 오가며 녹아드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공간, 호구조사 없는 자연스러운 공간, 지금 이곳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