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버릴까 봐
어제오늘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사실 많은 걸 했지만 그냥 살아낸 것이다. 플로라가 아프다.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물도 밥도 그 좋아하던 간식도… 힘없이 누워만 있는 게 안쓰러워서 사무실에도 데리고 갔었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였다. 힘없이 누워있었던 플로라 병원에 가야 하는데 지금 문 여는 병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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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어도 호전이 되지 않아서 플로라는 입원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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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전부인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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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내다 보니 가끔씩 느끼는 게 있다. 인간으로부터 느끼는 절망 실망 아픔과 같은 상처가 얼마나 내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지를 말이다. 감정을 자제하려고 해도 내가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일정기간의 침묵과 고요함이 존재해야 난 겨우 나를 다잡고 나아갈 수 있다. 내가 인간으로부터 감정적으로 요동치는 이유는 그들도 나름대로의 이유로 그들을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 옆에서 내 삶의 일부를 채우는 이 녀석들은 나를 대할 때 자기 자신은 배제한다. 오직 나를 바라보고 나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내가 피곤해 보일 땐 내 발을 핥아주고 내가 눈을 감을 땐 내 곁의 고요함을 지킨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며 나 자신의 희생만을 고려할 때도 있었지만 이들이 내 곁에 머무는 시간을 돌아보면 내가 말하는 희생이란 게 감히 언급이 될 수준의 것들이었나 싶다.
우리 플로라는 너무 조용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하고 수에르와 솔이에게 많은 걸 양보하는 아이다. 우리 집 첫째로 발을 들인 수에르를 오빠로 따르며 자신의 서열을 낮췄고 먹을 것 씻는 순서 출발해서 걷는 순서 등 모든 것을 수에르 다음으로 할 줄 알았다. 그리고 솔이가 우리 집에 오던 날부터 솔이를 돌보면서 천천히 걷는 솔이가 오지 않으면 뒤돌아서 기다려줄 주 아는 녀석이다.
대소변을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없었던 풀로라는 산책을 한 시간 정도하고 나서야 조용한 곳에 숨어들어 대소변을 보거나 모든 사람들이 잠든 깊은 밤이 돼서야 몰래 소변을 보는 것이 안타까웠던 아이다. 그래도 늘 밝은 모습으로 인형을 들고 뛰어다니고, 뼈간식을 주면 얼마나 즐겁게 먹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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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리 플로라가 아프다
그냥 누워만 있다. 사람들이 오가도 내가 들어와도 힘겹게 꼬리 두 번 흔드는 정도다.
양보를 잘해서 얌전해서 착해서, 난 그냥 플로라가 잘 살아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보채는 수에르와 공놀이를 더하고 솔이를 돌보느라 시간을 더 사용했었다. 플로라가 아프고 나니 플로라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내가 얼마나 플로라를 내 감정을 위해서만 내 삶에 채워놔 왔던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