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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넬로페 Aug 29. 2024

따가움, 그리고 찌릿한

솔이의 암치료 79일

솔이는 활동량이 유독 많은 아이다. 솔이와 하루를 보내면 내 애플워치로부터 하루 목표 움직임을 달성했다는 메시지를 반드시 받아내니, 솔이는 내 체력을 위한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솔이가 병원에 입원한 동안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도 솔이는 한평 남짓한 병원 침대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움직이는 중이다. 가끔은 솔이의 움직임 덕분에 건강한 아이라는 착각을 할 때도 있는데, 항암주사로 변해가는 솔이의 피부색을 직면하면 솔이가 아픈 아이였다는 것을 곧장 직시하게 된다.


솔이의 움직임은 밤에도 계속된다. 늦은 밤, 병실의 전등이 소등되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솔이는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링거선을 온몸에 두르며 불편하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또, 항암치료 중에는 소변으로 주사액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솔이는 오줌이 마렵다고 1~2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오줌을 싸고 다시 앉았다가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다 또 잠이 든다.


한편으론 솔이의 움직임이 너무 단조로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조용한 병원에서 동작의 소리가 조금 크게 느껴질 뿐이지, 침대 흔들어보기, 뒹글뒹글 몸 굴리기, 몸에 달린 선들을 잡아 뜯기 정도는 3살을 갓 넘긴 아이가 갇혀있는 공간에서 보일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이겠다 싶으니 말이다.


가끔 솔이의 동작이 크고 작은 것을 떠나 위험하다고 느낄 때는 색종이를 가위로 자르다가 링거 줄을 자르면 어떨까 하고 고민하는 눈빛을 보이는 순간이다.


그렇다 보니 솔이의 동작을 매의 눈으로 쳐다보고, 이쪽 저쪽 다니며 솔이를 통제하고, 나의 애플워치는 목표치 달성으로 나를 달랜다..


이렇게...나는 솔이의 행동이 과한지, 소리를 많이 내는지 모든걸 감시, 통제하다가 모든 게 지나치다 싶으면 가끔 따끔하게 혼내면서 솔이를 돌보고 있다. 솔이를 따끔하게 혼내는 순간은 모든 행동의 종착역이다. 솔이는 울고, 난 뽀로로를 틀어주며 솔이를 달래는 이주 기이한 대응책이 등장하는데, 그 뽀로로라는 영상이 솔이를 정지 시키기 때문이다.


영상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솔이는 영상을 보면서 움직이지 않고, 마치 굳어버린 동상처럼 영상과 눈 맞춤을 시작한다. 그 모습이 너무 싫어서 당장이라도 태블릿을 뺏어버리고 싶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 나 역시 OTT 드라마 한 편 정도는 정주행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기에, 뽀로로에 빠진 솔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솔이가 영상을 보는 동안 나는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고 양치도 할 수 있으며 조금 서두른다면 샤워도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부지럼을 떨지 못하고 낮잠을 선택할 때도 있다. 움직이기보단 간이침대에 내 몸을 기대고 잠시 숨을 고르거나 눈을 감는 일... 내게도 휴식이 되는 시간이다.


오늘 역시 그렇게 잠이 들었다. 솔이를 뽀로로의 세계로 인도하고, 나의 관찰? 감시를 잠시 멈추고 말이다.


그때 어디선가 '엄마',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솔이가 날 부르는 소리인데, 나는 그 짧은 찰나에 이게 꿈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곤 솔이가 오줌이 마렵구나... 하고 천천히 간이침대에 앉았다. '오줌이 마려운가?......'


... 근데...


항암제를 통과하는 링거선이 빠져있고, 선과 선 틈 사이로 항암제가 흘러나와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마치 정지화면처럼 보게 되었다.


항암제의 주의 사항이라고 한다면, 항암제에 절대 손이 닿으면 안 되는 것이고 항암주사 투여 후 배출되는 소변도 피부에 닿으면 안 된다는 방침이 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솔이가 분리시킨 주사줄을 들고 간호사를 호출했다. 그동안 항암제는 내 손을 타고 흐르고 침대를 조금 적셨다.


간호사도 나도 솔이도 모두 놀란 상황, 나는 모든 상황을 간호사에게 전달하고 손을 씻으러 달려갔다. 흐르는 물에 손을 여러 번 씻고 비누칠을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도 내 손은 따갑고 찌릿했다. 뭔지 모르는 것들이 내 피부에서 나를 콕콕 찌르는 느낌이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분명 나는 손을 깨끗이 씻었는데,

이 액체가 솔이 몸속에서 몇 시간 동안 들어가 온몸 전체를 관통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끔찍해졌다.

솔이가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밥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복통을 호소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잠시 따갑고 찌릿한데,

이 따갑고 찌릿한 것이 몇 시간 동안 지속된다면 어떤 상태일까.

....

솔이는 침대에 앉아 있다가 움직이기 불편해서 선을 잡아 뺐다고 했다. 솔이에겐 아직 항암주사에 대한 개념도 암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어쩌면 몸에 주렁주렁 달린 것쯤은 움직임을 방해한다면 빼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배가 왜 찢어질 듯 아픈지도 모른 채 주사줄 하나와 시름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하니 솔이의 옆모습이 너무 안쓰러운 밤이다.


#신경모세포종 #4차항암 #소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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