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다녀올게

단편소설 1화

by 김설원

수란이 외연도로 여행지를 정한 것은 ‘서해의 가장 끝’이라는 위치 때문이었다. 행정구역상 충남 보령시에 속하지만 울릉도처럼 쉽게 갈 수 있는 섬이 아니라는 자막도 눈에 띄었다. 상식적으로 서울에서 보령보다, 서울에서 울릉도가 까마득하게 느껴지는데 울릉도처럼 쉽게 갈 수 있는 섬이 아니라니. 알고 보니 안개 때문이었다. 외연도는 해무에 가려지는 날이 많아서 때를 잘 만나야 했다. 마음먹은 대로 흘러갔다면 이번 여행은 2년 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결심이 설 때마다 꽃샘추위가 물러나면, 백일홍이 피면, 생일이 지나면…… 마음속에 이런 미련이 소나기처럼 쏟아져서 매번 돌아서고 말았다. 하지만 올해 수란은 사십구 세였다. 이번에도 어쩌지 못하고 소나기를 맞으며 올해를 넘겼다가는 영영 길이 막혀버릴 것 같았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에 들어서는 순간 뒤에서 철문이 쾅 닫힌다. 빠져나갈 틈은 없다. 온전히 홀로 감당하며 흔들다리를 건널 수밖에. 수란에게 오십 세는 그런 의미였다. 무엇보다 Q가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안심하고 제 꽃발을 가꿀 최수란의 오십 세.

웬일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여행지는 섬이어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태어나서 섬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수란은 묘한 열등감을 느꼈다. 고민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그날 귀가해서 저녁으로 백설기를 먹으며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틀자 한적한 포구가 눈에 들어왔다. 띄엄띄엄 떠 있는 배가 적막감을 더했다. 내레이션 없이 자막과 배경음악이 목소리를 대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수란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선 잔잔한 선율이 안내하는 풍경을 감상했다. 최근 휴대전화 통신사를 바꾸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텔레비전의 화질이 생생했다. 흙더미 사이로 고개를 내민 어린잎들의 솜털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나란히 정박해 있는 어선들, 뽀얀 갈매기들, 빨간 등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트레킹 코스…… 쉽게 갈 수 없지만 고립된 섬은 아닌,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연기에 가린 듯 하다는 섬. 외연도는 그렇게 수란의 품으로 들어왔다.


대천여객선터미널은 한산하다 못해 음산했다. 대합실의 상점들이 문을 열어놨는데도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수란은 고개를 숙인 채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원래는 도착하는 대로 발권부터 하려고 했다. 현장구매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토요일이라 배를 타고 놀러가는 사람이 많겠다 싶었는데 분위기가 의외였다. 수란은 화장실에서 손보다는 마음을 말끔히 씻은 뒤 대합실을 살폈다. 만나기로 한 엄마는 보이지 않고 늙수그레한 두 남자만 오래된 청동 조각상처럼 앉아 있었다. 새해가 밝은지 겨우 열흘이 지났는데 여객선터미널은 늦가을의 어느 뒤안길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때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비스듬히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엄마는 전체적으로 구부정했다. 엄마의 눈길이 닿는 곳에 붉은 글씨로 ‘나가는 곳’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엄마가 이쪽을 바라봤다.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웃어도 우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수란은 “이렇게 만나니까 새롭네” 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몇 시 배라고 했지.”

“오후 한 시. 두 시간 넘게 걸린대. 중간에 섬 두 군데를 들렀다 가니까 넉넉히 세 시간은 잡아야 하나봐.”

“대천에 있는 섬이라면서 그렇게 오래 걸려?”

“서해에서 가장 멀리 있는 섬이래. 안개가 바다를 가리는 날이 많아서 배가 자주 뜨지 않는데 오늘은 하늘이 맑네. 행운이야.”

수란은 말을 내뱉고 뜨끔했다. ‘행운’이라는 단어를 얼른 주워 담고 싶었다. 자기도 모르게 불쑥 드러난 마음,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실수한 기분이 들어 수란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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