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다녀올게

단편소설 2화

by 김설원

웨스트프론티어호는 이름만 근사했다. 막상 실내에 들어서자 기름 냄새가 진동했고 좌석도 낡아 있었다. 여객선 입구의 작은 안내판에 총 톤수 140톤, 정원 180명, 그리고 선박검사를 완료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백팔십 명이 아니라 열여덟 명만 타도 배가 휘청거릴 것 같았다. 정말 선박 검사를 했을까. 엄마는 어느새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실내도 대합실처럼 휑했다. 승객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김이 샜다. 온통 적적한 분위기 때문인지 엄마의 발걸음에 흥이 살아 오르지 않았다. 수란은 엄마의 뒤통수가 보이는 자리에 몸을 부렸다.

“내일 배가 못 뜰 수도 있습니다. 월요일에 꼭 출근해야 하는 분은 지금 내리세요. 오 분 후 출발합니다.”

“날씨가 이렇게 화창한데요?”

“이건 오늘 날씨죠. 내일 일은 아무도 몰라요. 이쪽 바다는 변덕까지 심해서요. 아무튼 출근이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 분은 내리세요.”

선장이 돌아서자 소수의 인원이 술렁거렸다. 엄마만 꼼짝하지 않았다. 수란은 선장의 말을 흘려들었다. 배가 뜨지 않는다면 하루 더 묵으면 그만이었다. 지금까지 오래 참고 기다렸는데 그깟 하루 견디지 못할까.

몇몇 남자가 서둘러 내리자마자 쾌속선은 선착장을 떴다. 그들은 모두 낚시 가방을 둘러매고 있었다. 외연도에 다녀온 사람들이 쓴 블로그에 낚시 관련 사진이 많더라니, 그들도 낚시 계획을 세웠나 보다. 수란은 자그맣게 멀어져가는 낚시꾼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던진 굵은 낚싯바늘에 걸려들었을 우럭이나 놀래미, 광어가 목숨을 구했다. 잡힌 즉시 칼로 난도질당하든가, 아니면 끓는 물에 처박혀 굳어갔을 생물들. 선장의 한마디에 운명이 바뀐 물고기들은 오늘 밤 유유히 헤엄치며 짝짓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작년 삼월에 출생신고를 했더라. 순간 아찔하데. 내가 그 정도로 상종 못할 인간인가 싶어서.”

우리가 알기로 Q에게는 딸이 두 명 있다. 엄마는 가족관계증명서에서 Q의 셋째 딸을 봤다. 노인 기초연금 신청서를 제출하려면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한 모양이다. Q의 셋째 딸이 태어난 연도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부부가 임신했을 무렵 수란은 그를 불행하게 해달라고 날마다 빌었던 게 생각났다. 그러나 간절한 소원은 아무나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만 깨닫고 말았다.

여객선이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람이 불어댔다. 선착장에서 봤을 때는 바다가 잔물결을 일으키며 반짝거렸는데, 그 품에 안겨보니 거칠고 사나웠다. 배는 파도의 높이에 따라 출렁거리다가 어느 순간 뒤집힐 것만 같았다. 매서운 파도가 웨스트프론티어호의 유리창을 때릴 때마다 수란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승객들은 멀미를 잠재우기 위해 통로를 서성이거나, 외투를 벗어 뒤집어쓰거나, 화장실로 종종걸음 쳤다. 엄마는 멀미약을 자양강장제처럼 마셨다. 가슴이 답답할 때, 머릿속이 하얘질 때, 폭염에 부대끼거나 폭설이 쏟아질 때…… 멀미약을 먹고 의식이 서서히 몽롱해지면서 졸음이 오는 그 순간이 좋다고 했다. 누가 어디를 데리고 다니지 않아 기차나 고속버스에 탑승할 일이 없으니 엄마는 멀미약의 용법과 용량을 지키지 않았다. 배가 높은 파도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수란은 멀미 대신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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