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3화
여객선은 외연도 선착장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장시간 파도에 부대낀 배가 허연 입김을 헉헉 내뿜는 듯했다. 출입문 입구에 꾸물꾸물 모여 있는 승객들은 멀미에 지친 낯빛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오히려 쌩쌩했다. 외연도 주민인 것 같았는데 번번이 오갔을 뱃길에 길들여진 냄새를 풍겼다. 산 아래 어울려 있는 파랗고 하얗고 붉은 집들을 보니 속이 좀 편안해졌다. 갑판에 나서자 따사로운 햇살이 온몸을 감쌌다. 바람도 부드러웠다. 바다 냄새도 맡아졌다. 꿈속을 헤매다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엄마만이 거기서 여기로 건너오지 못하고 맴도는 듯했다. 작아지고, 느려지고, 구부정하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배에서 내리자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쪽을 바라봤다. 지금 도착하는 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민박집 주인들 같았다.
“혹시 서울에서 오신 분이에유? 햇살민박인데유.”
민박집을 오래 운영하다 보면 목소리만 들어도 외모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이 그려지나, 아니면 엄마랑 둘이 묵는다고 했으니 모녀를 알아본 걸까. 수란은 자기네 집에서 지낼 손님을 단번에 알아챈 그녀의 눈썰미에 놀랐다. 순간 수란의 머릿속에 뺑덕어멈이 떠올랐다. 뽀글뽀글한 머리, 윤기가 감도는 도톰한 입술, 눈웃음, 나름대로 멋을 부린 옷차림, 무엇보다 가늘면서 톤이 높은 목소리가 그랬다. 민박집 주인이 목소리만 듣고 저 여자구나, 하며 투숙객을 알아봤듯 수란도 그녀를 보는 순간 뺑덕어멈이구나, 생각했다. 수다스럽고 심술궂은 심청이의 계모가 아니라, 애교스럽고 잔정 있는 심학규의 후처로서 수란이 부러워했던 여자. 우리 엄마에게도 뺑덕아범이 나타나기를, 그래서 마음 놓고 용궁을 거쳐 연꽃배를 타고 새롭게 살 수 있기를 소망했던 시간들. 그러나 엄마는 그 흔한 뺑덕아범도 곁에 두지 못했다.
뺑덕어멈이 “다 왔어유, 왔어유” 하면서 앞서 걸었다. 작년 여름, 정확히 오십칠 일 만에 환자복을 벗은 엄마는 눈에 띄게 굼떴다. 처음에는 퇴원 후유증으로 그러다 말겠지 싶었으나 엄마는 작은 기적을 일으킨 대신 느리게 고여 있는 노인이 됐다. 화장으로도, 화사한 옷으로도, 화창한 웃음으로도 감출 수 없는 몸과 마음의 퇴화.
“좀 빨리 걸어봐. 민박집 아주머니가 기다리잖아.”
“나는 빨리 걷는다고 걷는 거야. 너 먼저 가. 천천히 따라갈게.”
수란은 아차 싶었다. 외연도에 머무는 동안엔 어떤 경우든 말을 곱게 내뱉으리라는 다짐이 그새 흐무러지다니.
“저 분 걸음걸이가 워낙 빠르네. 쫓아가려니까 나도 숨이 차. 생각할수록 엄마는 하늘이 도왔어.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는데 몸도 멀쩡하지, 말도 잘하지, 기억력도 좋지, 나한테 문자도 잘 보내지. 뇌출혈로 쓰러진 사람들은 퇴원 후 몸이 눈에 띄게 부자연스러워. 한쪽 손이나 다리가 마비되는 건 보통이고.”
몸이 어디 하나 망가진데 없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듯, 수란은 일부러 밝게 말하며 엄마의 발걸음에 맞춰 걸었다. 엄마는 응, 응, 거리기만 했다. 평소에는 “그래? 걸음걸이도 괜찮아?” “말이 어눌하게 들리지는 않고?” 하면서 재깍 반응을 보였는데, 언제부턴가 ‘응’ 이라고만 했다. 응, 응, 응…… 엄마의 입에서 ‘응’이 썩은 치아처럼 튀어나올 때부터 수란의 마음이 조금씩 독해졌다. 당분간만이라도 발을 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가슴 밑바닥에서 누군가가 밤마다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