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삶에 뿌리를 내리되 읽어서 즐거워야 한다"

by 김설원

작년,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에 경주로 이사했다. 오래 전부터 꿈꿨던 이주였기에 미련은 없었다. 최대한 버리고 나눠줘서 홀쭉해진 살림살이를 이삿짐 차량에 싣고 서울톨게이트를 벗어날 때는 오히려 기이한 가벼움을 느꼈다. 21년의 서울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어딜 가든 거대한 무덤들이 수수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서 삶과 죽음이 마치 쌍둥이 자매처럼 느껴지는 경주의 하루하루는 축복 그 자체였다. 포항, 울산, 영천, 부산…… 매력적인 도시들이 가까이 있어 만족감은 더해졌다. 올해는 더욱 의미 있는 해였다. 매주 국립경주박물관을 드나들며 토요일에는 고고학 강의를 듣고, 일요일에는 유적․유물을 찾아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11월의 답사 지역은 포항이었다. 나는 보경사와 오어사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에서 소설의 플롯을 짰다.

베이비부머, 고령화, 반퇴시대, 고독사, 하우스푸어, 가족해체, 청년실업…… 이번 학기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살펴본 한국사회의 어두운 현실이다. 나는 강의할 때마다 시대를 제대로 읽어 주관이 바로 서야 알찬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목청을 돋우었다. 그러다가도 나를 향해 다소곳이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보면 대번 부끄러워졌다. 아직도 ‘소설’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내가 도대체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그 강좌는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시대의 그늘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머릿속으로나마 꾸준히 소설의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 “문학은 삶에 뿌리를 내리되 읽어서 즐거워야 한다”는 노학자의 지당한 말씀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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