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 송장번호 550787773140

by 김설원

지난주 토요일 오후 1시쯤 그녀가 찾아왔다. 충격 그 자체였다. 그녀의 존재감은 우리 아파트, 아니 세상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무슨 칡뿌리처럼 내 안에서 질기게 자리를 넓혀 가던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대로는 떠나지 못하겠다는 듯이. 김효덕, 그녀의 이름을 입안에 넣는다. ‘김’은 입천장에, ‘효’과 ‘덕’은 양쪽 어금니에 올려놓고 혀로 만져 본다. 자음과 모음들의 결이 울퉁불퉁 거칠다. 시간을 헤아려 보니 정확히 2년 7개월 만이었다.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결항으로 발이 묶인 상황에서 낚싯배를 타고 쫓기듯 외연도를 빠져나온 날이. 안전은 장담하지 못한다는 조건을 내세운 뱃삯은 20만 원이었다. 나는 그날 멀미약을 두 병이나 마셨다. 낚싯배가 풍랑에 뒤집혀 죽든, 약물 과다복용으로 의식을 잃는다면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김효덕이라는 이름을 최대한 예의를 갖춰 불러야 한다. 이런 마음이 저절로 먹어졌다. 일종의 거리두기랄까. 김효덕 씨와 나는 주방 겸 거실에 앉아 있었다. 트위스트런을 가운데 놓고서. 짙은 노란색 운동기구가 두 여자를 화해시키려는 순박한 이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끼어들어요”라고 김효덕 씨가 말했다. “속속들이 알면 오히려 나를 동정할 거예요”,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냉장고, 머그컵, 추억의 강냉이, 방석, 책장, 2인용 식탁, 전자레인지, 커피메이커, 이마트 장바구니 등이 나를 꼼짝 못 하게 엿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왕좌왕하는 기분으로 멍하니 손을 놓고 있는데 때마침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냉큼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여자 둘이 동시에 배시시 웃으며 5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무슨 일이죠?”

“오병이어 교회에서 나왔어요, 하나님 믿고 천당 가시라고요.”

“관심 없어요.”

나는 일부러 현관문을 거칠게 닫았다. 퉤, 지옥에나 떨어져라. 거룩한 분의 양들임을 앞세우는 여자들이 문에 대고 주먹을 들이대며 막말을 하고 있겠지. 오병이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군중 몇천 명을 배불리 먹였다는 기적의 일화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분이 보여 주는 신비한 기적을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았다. 김효덕 씨를 보는 순간 절반의 불신에 대한 대가가 바로 이것인가 하는 체념이 밀려왔다.

김효덕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고파, 밥 좀 줘” “여기까지 쉬지 않고 걸어왔어”, 라고 말했다면 얼른 밥상을 차리고 보송보송한 이불도 깔아 줬을 것이다. 그녀는 13평짜리 아파트를 온통 차지하고 있을 뿐 내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물론 내 입도 무슨 접착제를 발라 놓은 것처럼 단단히 붙어 있었다. 갑자기 발이 시려 서랍장에서 수면 양말을 꺼내 신었다. 발뿐만이 아니라 허벅지에도 어깨에도 머릿속에도 얼음이 가득 들어있는 것 같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냉장고 안에서 바나나우유를 꺼냈다.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새우 껍질처럼 느껴지는 마개를 뜯어 꿀꺽꿀꺽 마셨다. 서서히 부패할 채비를 하고 있을 바나나우유를 마시자 오히려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냉장고에 몸을 기댔다. 김효덕 씨가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였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어느 집의 베란다에서 이불을 터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의 날갯짓이 공기를 가르며 탄력적인 소리를 뿜어냈다. 나도 데려가 힘껏 털어 주세요, 내 몸은 먼지투성이랍니다.

어떤 감촉까지 느껴지는 묵지근한 정적 아래서 불안이 점점 자리를 넓혀간다. 김효덕 씨가 되살린 정적은 마치 거대한 거북이처럼 느껴졌다. 캄캄한 바닷가, 거북이가 모래를 깊숙이 파헤쳐 알을 낳듯이 방안에 둥글둥글 쌓이는 불안. 그럴 수만 있다면 김효덕 씨를 번쩍 들어 올려 문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다. 그녀는 담녹색 부직포에 감싸여 ‘취급 주의’ 딱지를 붙이고 누런 상자에 실려 왔다. CJ대한통운, 송장번호 550787773140.

keyword
이전 03화베스트독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