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글을 쓸수록 역시 작가들이 가장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해요. 독자들의 머릿속에 새겨지는 어떤 문장이나 장면을 만들어 내기까지 고뇌의 폐달을 밤낮 밟았을 테니까요. 지금 이 순간 작가들이 세상에 내놓은 작품 가운데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오에 겐자부로‧오자와 세이지 지음, 정회성 옮김)와 <비둘기>(파트리크 쥐스킨드 지음, 유혜자 옮김)가 떠오르네요.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는 1935년생 동갑내기 두 거장의 대담집이에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와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예술론과 교육론에 대해 깊은 사유를 펼쳐 보여요. 다채로운 경험에서 얻은 삶과 예술에 대한 통찰이 빛나죠. 좌담 중에 오에 겐자부로가 이런 말을 들려줘요.
“회사도, 소사이어티도, 조직도, 심지어 국가도 중요하지만, 저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인간의 가치는 결국 개인에게 달려 있죠.”
“에너지의 원천은 의외로 단순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성에 대한 욕망, 먹고 싶은 욕구, 먹고 살려면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 같은 데서 생기는 게 에너지 아닐까요? 그런데 갈수록 그런 것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욕망이 없으면 인간의 삶은 황폐해져요.”
<비둘기>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가벼운 장편소설이에요. 어느 은행의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50대 조나단이 주인공이죠. 세상에 대한 불신과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서, 옹색한 방을 유일한 은신처로 삼는 인물이에요. 어느 날 그의 방 문 앞에 나타난 비둘기, 그것에 공포를 느끼면서 심리적으로 쫓기는 조나단의 겉과 속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묘사했어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조나단의 심리에 빠져들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시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던 조나단이 비둘기로 인해 세상에 맞설 용기를 얻는 모습을 보면 어떤 충만함이 제 안에 가득 차올라요.
니체의 철학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주눅 들지 마!” 아닐까요?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진흙구덩이를 헤쳐 나가자. 저는 학생들에게 소설을 가르칠 때 ‘어느 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를 줄기차게 강조해요. 어느 날 나에게 찾아온 ‘무슨 일’, 그로 인한 화자의 육체적‧정신적 동선을 보여주는 것이 소설이라고 말하죠. 한마디로 주인공이 ‘무슨 일’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학생들의 습작소설을 보면 대개 그 ‘무슨 일’이 희미해요. 아예 없기도 하죠. 때문에 지루하게 과거 이야기만 늘어놓는 거예요. 문학에서 비극은 ‘성장’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소년이 등장하는 소설을 대개 성장소설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현대소설 자체가 성장소설 같아요. 우리는 누구나 미성숙한, 외로운 사람들이니까요.
‘가족이 희망이다’ ‘가족이 최후의 보루다’
흔히 입에 올리는 이런 말들에 의구심이 들곤 해요. 과연 그럴까. 가족이라는 건축물은 의외로 쉽게 붕괴되는 것 같거든요. 부모자식 간에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가급적 투명하게 보여줘야 하는데 보통 어두운 면은 숨기려고 하잖아요. 그러다 지뢰를 밟은 것처럼 무슨 일이 터지면 서로를 원망하거나 증오하기 바쁘죠. 결국 남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 버리고요. 그러니까 우리 가정이 어떤 레일 위에서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 가족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해요. 서로에게 솔직할 때 가족애가 두터워진다고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