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할머니 이야기

by 김설원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노상 밤하늘만 바라보며 친정 식구들을 그리던 시절,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라디오를 벗 삼아 울적한 심사를 달래곤 했어요. 내 울퉁불퉁한 마음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밥만 하던 손이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라디오에 출연한 어떤 작가가 내 고민을 해결해줬어요. 아무 책이나 펼쳐 꾸준히 베끼다 보면 언젠가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대요? 그 시절 교회를 제 집처럼 드나들며 목회자를 꿈꾸던 셋째 딸한테 말했더니 성경책을 구해줬어요. 그날부터 나는 공책에 성경 말씀을 새겼습니다. 딸애는 잠언이나 시편부터 읽으며 베끼라고 했지만 나는 창세기부터 필사했어요. 처음에는 글자를 보고 그리는 수준이었답니다. 허구한 날 밥하고 빨래만 하던 손으로 연필을 쥐려니 어색했지만, 한편으론 무슨 대단한 감투를 쓴 것처럼 우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한밤중에만 필사할 수 있었어요.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대개 자정이 넘었거든요. 처음에는 창세기 한 줄을 읽고 쓰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려 한 문단을 다 옮기고 나면 어느새 새벽 두 시가 넘곤 했지요. 그렇게 새벽 늦게까지 공책에 글자를 수놓다가 겨우 두 세 시간 눈을 붙이고서 부엌에 나가면 몸은 찌뿌드드해도 마음은 가벼웠어요. 나는 꾸준히 성경책을 베꼈습니다. 언젠가 꼭 글을 써보겠다고 다짐한 내가 기댈 곳은 성경책 밖에 없었으니까요. 내 손으로 그린 글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공책을 보면 배꼽에서부터 산뜻한 기운이 올라왔어요.

처음에는 띄어쓰기가 엉망이고 글씨도 어수선했는데 달포쯤 지나니 제법 틀이 잡히데요. 창세기나 신명기의 내용도 조금씩 머릿속에 들어오고 말입니다. 손에 탄력이 붙으니 필사가 재밌습디다. 쓰면서 내용을 음미하다 보면 눈앞에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어요.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이 몸은 간절히 당신을 찾습니다’ 라는 문장에서 ‘간절히’를 ‘애타게’로 고쳐 써보기도 했지요. 창세기를 다 옮겨 적는데 두 달 가까이 걸렸습니다. 밥 먹고 필사만 한다면야 후딱 끝내버릴 수 있었지만, 나는 대식구를 비롯해 일꾼들을 챙겨야 하는 맏며느리였기에 오직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답니다. 성경책을 필사하다가 지루해지면 딸들이 버린 책이나 잡지를 곁에 뒀어요. 잡지에서 누군가의 눈물겨운 사연을 읽으면 나도 덩달아 코끝이 찡해지고, 죽도록 고생한 경험담을 마주하면 왠지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지요.

어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질리고 재미가 없어질 텐데 필사는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고, 스스로가 대견했습니다. 아이가 걸음마를 하듯, 한글을 익히고 나서 구구단을 외우듯 나는 글쓰기의 요령을 조금씩 터득했습니다. 남의 글을 부지런히 베끼다 보니 뭔가를 써보고 싶은 욕심이 내 안에 한 뼘 한 뼘 자라데요? 그래서 글쓰기 공책을 마련해 두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봤지요. 알이 굵은 감자를 캐면서 느낀 보람이랄지, 누가 내팽개친 타이어에 흙을 채워 호박씨를 심은 날의 풍경 등등을요. 나는 여름을 가장 좋아합니다. 더위에 약한 체질이라서 여름이면 맥을 못 추는데도 그 뜨거운 계절이 기다려져요. 내가 여름을 반기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바로 매미 때문입니다.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서서 매미의 요란한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뭐랄까요, 몸이 붕 뜨는 것 같아요. 매미들이 나를 에워싸고서 일제히 찌르르르르, 하고 울면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랍니다. 물론 매미 이야기도 글로 써봤지요. 나는 강원도 토박이지만 필사하면서 서울말을 익혔고,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도 배웠습니다. 필사하고 글을 쓸 때, 내가 젊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확연히 들어요. 머리를 염색하거나, 화사한 옷을 걸치거나, 화장으로 검버섯을 감출 때가 아니라, 어수룩한 문장들이 내 손에서 흘러나오면 나이를 까맣게 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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