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케묵은 이야기 '밥'

by 김설원


“엄마는 혼자 살면서 무슨 밥을 이렇게 많이 해?”

“적게 한다고 지은 밥이 그려.”

“좀 귀찮아도 조금씩 해서 먹어야 밥이 맛있지. 이렇게 밥을 많이 하니까 일주일 내내 헌밥을 먹잖아.”

“귀찮아서 밥을 많이 하남? 대식구 밥만 하던 손이라 그렇지.”

“냉장고에 반찬도 그득하네.”

“그것도 손이 문제여.”

이웃에 살면서 수시로 드나드는 딸애가 잔소리를 쏟아내고는 자리를 떴다. 딸애가 냉장고 안에 있는 반찬은 덜어 갔지만 밥은 그대로 있다. 압력밥솥에 가득한 밥을 혼자 언제 다 먹나. 보기만 해도 입맛이 떨어진다. '앞으로는 밥이든 반찬을 조금만 해야지', 하는 다짐이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허물어지고 만다. 내 마음과는 달리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바가지에 쌀을 푹푹 퍼 담고, 텃밭에서 달래를 한 소쿠리 캐고, 김치를 종류별로 담근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아, 내가 또 음식을 잔뜩 했구나!’ 하고 무릎을 친다. 하기야 내 손을 탓할 수만은 없지. 숱한 세월 동안 대가족 살림에 길들여진 손인데, 그 시절과 까마득히 멀어졌다고 해서 단출한 밥상에 그리 쉽게 길들여질까. 나의 열손가락은 피돌기가 멈출 때까지 그동안 지겹게 차려댄 밥상을 잊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나는 주방으로 나선 김에 밥을 먹기로 한다. 아까 딸애가 바지락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뿌리쳤다. 이틀 내리 밖에서 점심을 먹었더니 그새 집밥이 그립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수저질하는 게 여전히 어색하다. 나는 식탁에 앉아 있을 때면 세월이 무수히 흘러갔음을 실감한다. 오로지 나를 위해 밥을 지어서 어깨 펴고 앉아 먹고 있다니…… 옛날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내가 평소에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밥 먹었냐?, 밥 해야지, 밥 먹고 가…… 밥, 밥, 밥, 밥.

“엄마, 밥 타령 좀 그만해. 밥하는 거 지겹지도 않아? 밥 하지 마, 나가서 사먹게. 밥 좀 그만 챙기고 이제 편히 사시라고.”

나는 자식이든 이웃들을 만나면 밥 안부부터 묻는다. 그러면 딸애가 대번 핀잔을 준다. 부엌에 틀어박혀 밥만 해대는 엄마를 보고 자랐으니 밥, 밥, 밥, 하는 소리가 지겹기도 할 것이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밥을 했다. 하루에 보통 삼십 명 정도가 먹는 밥을 꼬박꼬박 지었다. 누군가는 옛날 여자들은 모두 그렇게 살았다고 말하겠지만 내 경우는 좀 다르다. 내 삶에서 밥하고 상을 차린 시간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싶을 정도로 ‘밥’에 쫓기며 살아온 세월이었으니까.

최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보니 일꾼까지 합해서 식구가 열다섯 명이었다. 부엌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시어머니와 내가 전부였다. 시어머니는 일손을 거들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양반이라 집안일은 거의 내 몫이었다. 시댁은 객식구가 많았으며 동네 사람들의 ‘밥집’이기도 했다. 언제든지, 얼마든지 들어오라고 대문을 항시 열어놔서 뱃속이 허한 길손이 끊이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내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면 그게 누구든 밥상을 차려주라고 단단히 일렀다. 지금이야 쌀이 남아도는 세상이라 밥상 귀한 줄 모르지만 그때는 굶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런데 누구누구네 집에 가면 군소리 없이 밥상을 차려주니 개미 꼬이듯 모여드는 것이다. 동전 한 닢도 허투루 쓰지 않았던 시아버지가 밥 인심은 어쩜 그리 후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시아버지가 밥 선행을 베풀수록 내 몸은 으스러졌다. 우리 집에서 살거나, 오다가다 발걸음 하는 사람들은 보리밥과 담백한 반찬들로 배를 채우는데 나는 쫄쫄 굶으며 밥상을 날랐다. 이른 새벽에 시장으로 일하러 가는 일꾼들의 술국을 시작으로 아침, 새참, 점심, 새참, 저녁, 밤참을 때마다 챙겼다. 새벽 세시 반쯤 어김없이 일어나 일꾼들을 일터로 보내고 나면 본격적으로 부엌에서의 전쟁이 시작됐다. 나는 밥에 물을 말아 부뚜막에 올려놓고 후딱후딱 떠먹곤 했다. 날마다 지지고 볶는 냄새에 질려서 식욕이 저만치 달아났지만, 내가 그렇게라도 먹어 기운을 차리지 않으면 밥을 누가 한다니? 절친하게 지냈던 이웃 아낙들이 일복이 터진 나를 딱히 여겨 짬짬이 찾아와 거들어줘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새우젓을 팔러 가는 길에 들러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 중 몇몇은 지금까지 이 동네에 살면서 함께 늙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눈빛만 봐도 통한다. 흘러간 세월의 밝고 어두운 면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함께 있으면 자식이나 동기간보다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생긴 모양이다.

집안일을 끝내고 나면 한밤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가 퍼뜩 눈을 뜨면 밥을 지어야 하는 새벽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새벽 장사를 하러 나가는 일꾼들의 입을 책임지러 부엌으로 향했다. 나의 고역을 동네 개들도 다 알아서 하루쯤 일손을 놓는다고 꾀병 운운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또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설마 굶기야 하겠냐만 아무래도 ‘밥’ 걱정이 되어 어떤 날은 불덩이 같은 몸을 이끌고 부엌으로 갔다. 지나친 책임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학대한 미련퉁이. 하지만 어쩌겠나. 손수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만, 따뜻한 밥이 내 가족이든 군식구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봐야만 토끼잠이라도 편하게 자겠는 걸. 이런 바보라서 나는 전쟁 통에 친정으로 잠시 피난을 가면서도 폭격의 두려움보다 식구들의 밥 걱정에 마음을 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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